‘지은 죄도 모른 채 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고, 어느날 자고 일어나니 갑충으로 변해있다.’ 체코 작가 프란츠 카프카의 소설 ‘심판’과 ‘변신’의 내용이다.
21일 개봉하는 ‘큐브’ 시리즈 3편 ‘큐브 제로’를 보다 보면 인간운명의 부조리함을 고발한 이들 소설이 머리 속을 떠나지 않는다. 잠에서 깨어난 뒤 정육면체 방이 끝 모르게 이어진 구조물에 갇힌 것을 깨닫는 등장 인물들. 자신이 누구이고 왜 그곳에 있는 지 모르는 이들이 그저 살아 남기 위해 온갖 살인장치가 구비된 큐브에서 탈출하려 하는 모습이 소설 내용과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큐브 제로’는 1, 2편에서 그 동안 꼭꼭 숨겨 왔던 ‘큐브를 누가 만들었으며 누가 관리하는가’라는 비밀의 일부를 공개한다. 첨단 감시 장치가 구비된 통제퓻【?근무하는 에릭과 도드는 수감자들의 꿈을 저장하기도 하고, 위층의 명령에 따라 처형을 집행하기도 한다. 그러나 정작 그들도 과거를 알지 못하며 왜 그곳에서 ‘큐브’를 조종하는 지 알지 못한다. 단지 어제 그랬던 것처럼 오늘을 살아가면 그만. 곁에서 근무하던 동료가 어느 날 사라져도 그저 휴가를 떠난 것으로 눈을 감는다. "왜?"라고 의문부호를 머리 속에 떠올리는 것은 금물. 알고 보면 그들도 다른 관찰자로부터 감시를 받는 실험대상 일뿐이다. 1, 2편이 ‘큐브’ 내부라는 한정된 공간을 통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삶의 단면을 짚어냈다면, ‘큐브 제로’는 통제실로 부조리의 공간을 확장한다.
그러나 ‘큐브 제로’는 굳이 머리를 싸매며 봐야 하는 묵직한 영화는 아니다. 스릴러 영화로 즐길만한 장치들이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있다. 불 철선 소음 냉기 바이러스 황산 등 상상 가능한 살인 무기들이 조금은 섬뜩하지만 객석에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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