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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떠나는 주말 - 황홀한 하얼빈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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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 떠나는 주말 - 황홀한 하얼빈의 밤

입력
2005.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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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하다’는 형용사만으로는 안 된다. 무언가 다른 표현은 없을까. 찬란하다는 어휘도 부족하다. 눈부시게 반짝이고 맑고 밝고 곱고 멋있고 환상적이라는,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말의 총합으로도 그 모양을 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제21회 하얼빈(哈爾濱) 빙설축제 참관의 감상은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다. 얼음과 눈 구조물들이 어둠 속에서 빛과 색채를 만나 어떻게 달라지는지 확인할 수 있는 곳, 장인(匠人)의 손끝에서 태어난 그것들이 어둠 속에서 천변만화의 요술을 연출하는 곳, 하얼빈은 지금 세계 각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그 아름다움은 영하 30도 혹한?칼바람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어서 꿈을 꾼 것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건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그 아름다움은 기억의 창고에 길이 저장될 것이다. 느긋하게 감상할 여유가 허용되지 않아 더욱 소중한 기억이 될 것이다. 방한복으로 완전무장을 하고도 20분 이상 견디기 어려운 쑹화강(松花江) 밤바람을 맞아보는 것도, 편하고 즐거운 것만 좇는 일상적인 관광에서는 느끼기 어려운 독특한 체험이다.

우리의 의식 속에 자리 잡은 북만주 땅 하얼빈은 그런 곳이 아니다. 민족의 원수를 응징한 영웅의 의거지로 기억되는 땅, 춥고 어둡고 멀기만 한 변방이다. 일제 식민지 시대 우리 아버지 할아버지들이 살길을 찾아 울면서 찾아갔던 포한의 땅이다. 그런 곳을 아름다운 밤의 도시로 변모시킨 것은 현대중국, 개방중국의 상징이기도 하다.

하얼빈=글·사진 문창재(언론인) mcj@naver.com

■ 중국 하얼빈 | 빙설축제 - 눈·얼음의 동화 도시 하얀 닭은 중국의 새날 알리고

밤하늘에서 내려다 본 하얼빈은 어둡고 칙칙하다. 그러나 공항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가는 차 안에서부터 ‘얼음과 눈의 도시’ 이미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일정한 간격으로 얼음 조각 작품을 설치하고 조명을 한 가로의 모습이 이국적이다.

올해로 스물 한 번째인 빙설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하얼빈 시가지를 동서로 흐르는 쑹화강 북서쪽 둔치에서 열리는 빙등축제. 넓이가 40만m2가 넘는다는 행사장 주차장에 내리면 ‘빙설 대세계(大世界)’라는 큰 아치가 관광객을 맞아준다. 휘황한 네온사인으로 장식된 얼음 문패다. 반질반질한 얼음판 길을 조심조심 걸어 정문을 들어서면, 화려한 조명을 받은 얼음기둥 대열이 방문객을 맞아준다. 그 주위에 얼음으로 지은 건물과 조각 작품들이 환상의 세계에 들어선 이방인을 위압하듯, 어두운 밤하늘에 높이 솟아 있다. 어둠 속에서 빛과 조명이 만들어내는 얼음예술의 극치다. 얼음의 투명도에 새삼 놀라게 된다.

올해의 축제는 서양건축을 주제로 하고 있다. 파리 개선문과 에펠탑을 중심으로, 러시아 풍정의 건축물과 서양마차 말 백설공주 로봇 같은 조각 작품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중국의 상징 만리장성이 빠질 수 없다.

4층 구조로 된 만리장성은 높이만 해도 30m는 돼 보인다. 카펫이 깔린 얼음계단을 올라 성곽 꼭대기에 서면, 휘황찬란한 행사장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 오색찬란한 조명과, 보석보다 눈부신 얼음의 빛이 어우러진 색채의 향연이다. 조명의 요술도 그렇지만, 컬러얼음으로 만든 구조물이 어둠 속에서 보여주는 변화는 상상을 초월한다.

연등을 연상시키는 붉은 등으로 장식된 한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본다. 태초의 모습이 이랬을까. 소연한 바깥세계를 멀리 떠나온 듯, 얼음뿐인 벽과 천정이 만드는 공간에 천년의 정적이 감돌고, 의식은 더욱 명징(明澄)해진다. 먼 이명(耳鳴) 속에 솜털이 일어서는 소리까지 들리는 것 같다.

시선을 끄는 볼거리는 많아도 더 이상 추위를 견뎌내기가 어렵다. 포장을 치고 차를 파는 업소로 들어간다. 더운 커피 한잔으로 속을 녹이면 다시 20분 쯤 견딜만하다.

호텔 로비에 적혀있는 아침 기온은 섭씨 영하 27도였지만, 강바람이 매운 한밤중의 체감온도는 영하 40도 쯤 되리라는 것이 현지 가이드 설명이다. 관광마차를 끄는 말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모습은 추위를 짐작케 하는 지표다. 더운 김이 얼어붙으면 짐승도 동상에 걸리는 것은 같은 이치인가. 디지털 카메라가 작동을 멈추어 한 커트 찍고 한동안 품속에 넣어 녹여주어야 하는 것도 첫경험이다.

그래도 즐길 것은 즐기는 것이 관광의 묘미일 것이다. 얼음으로 만든 야외 무도장에는 경쾌한 음악이 흐르고, 그 리듬에 맞추어 춤을 추는 젊은 연인들의 모습이 보기 좋다. 얼음썰매 타기도 인기다.

얼음이 있는 곳에 없어서 안 될 것이 눈이다. 쑹화강 북쪽에 생긴 섬 타이양도(太暘島) 공원은 눈 나라다. 다리를 건너면 천지는 온통 눈뿐인데, 키 큰 나목대열 사이 빈 공간을 거대한 눈 조각 작품들이 차지하고 있다.

작품 주제는 중국 민화의 단골소재인 용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류다. 잘 살아보자는 현대 중국인의 씩씩한 기상을 소재로 한 것도 있다. 닭의 해를 의식한 어미닭 한 쌍은 회장 안쪽 깊숙이 자리 잡았다. 순한 사슴 한 마리를 데리고 나와 그 작품을 배경으로 관광객들에게 사진 모델 영업을 하는 현지인 얼굴에는 ‘자본주의 중국’의 표정이 어려 있다.

여기도 추위는 마찬가지여서 군데군데 바람을 피할 업소가 영업을 하고 있다. 그중 한국 관광객의 눈길을 끄는 업소는 초가집 모양의 눈집. 조선 차와 먹을 것을 판다는 간판이 눈 위에 선명하다.

1m 두께로 언 쑹화강 얼음을 채취해 벽돌 모양으로 잘라 갖가지 구조물을 축조하는데 쓰인 얼음이 12만m2, 눈 조각과 구조물에 쓰인 눈이 15만m2라는 통계수치에서는 큰 의미를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이 축제의 경제효과는 놀라울 정도다.

‘흑룡강 빙설에서 백금을 캔다.’ 하얼빈 빙설축제가 한창인 10일 한글신문인 ‘흑룡강신문’ 1면 기사 제목이 빙설축제의 열기를 말해준다. 축제 개막일인 5일 이후 세계 각국에서 모인 관광객들로 하얼빈 시가지가 북적거리고 있다. 행사장에 홍보 구조물을 만들어 회사 이미지 선전에 나선 각국 대기업들은 시내 곳곳에서 상담회를 열어 하얼빈 경제계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특히 스키 스케이팅 같은 겨울스포츠 관련 제품과 첨단전자제품, 모피 방한복 같은 계절상품 전시와 상담이 활발하다. 행사기간 중 관광객이 평소의 3~4배이고, 직접 취업자가 3~4만 명이라는 통계는 추위를 파는 계절사업의 성공을 입증한다.

하얼빈=글·사진 문창재(언론인) mcj4617@naver.com

■ 하얼빈 볼거리 | 야생공원 - "호림원" "으르렁~" 시베리아 호랑이 포효 생생

얼 음과 눈을 제외하면 겨울 하얼빈의 볼거리는 빈약하다. 그러나 동북 호림원이라는 호랑이 야생공원의 매력은 겨울철이 제 맛이다. 눈 덮인 들판에 무리 지어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떼는 시베리아 호랑이의 생태를 짐작케 해준다.

빙설축제장 북쪽, 자동차로 10여 분 거리에 있는 호림원은 넓은 들판에 철책을 막아 방사형태로 호랑이를 사육하는 공원이다. 어린 호랑이들이 까불고 장난치는 모습에서 발정기 성호(成虎)들의 교미장면에 이르기까지, 호랑이 생태를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는 흔하지 않은 공간이다. ‘황소만한 호랑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우람한 체구에서 시베리아 호랑이의 위용을 확인할 수 있고, 황소 넓적다리 굵기의 앞발을 보면 그 파괴력을 상상할 수 있다.

눈밭을 뛰고 어슬렁거리는 호랑이 바로 옆을 버스로 지나치면서 관찰하는 호림원 관광의 묘미는 먹을 것을 호랑이 앞에 던져주는 재미다. 40위안을 내고 살아있는 닭 한 마리를 사서 던져주면, 고양이가 쥐를 잡아채듯 날렵하게 낚아채 눈앞에서 잡아먹는 야성을 볼 수 있다. 돈 많은 사람은 황소를 덤프트럭에 싣고 가 풀어놓고, 그 푸짐한 ‘사육제’를 즐기기도 한다. 버스투어가 끝나면 사육장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북극곰과 같은 피부를 한 호랑이와, 흰 바탕에 검은 줄무늬를 가진 백호 한 쌍이 ‘인기배우’다.

■ 여행수첩

하얼빈까지는 아시아나 항공과 중국 남방항공사 직항노선이 있어 인천공항에서 2시간이면 도착한다. 항공요금은 왕복 40만 원 정도이고, 현지 숙박료는 4성급 호텔이 1박에 50달러 수준. 2월 중순까지인 빙등축제 기간 중 현대미주여행사(02-754-6124) 등 국내 여행사들의 패키지 상품도 있다. 2박3일 패키지 요금은 요일에 따라 59만 9,000원부터 69만 9,000원까지. 호텔 5식에 양쪽 공항세 포함이다. 출발시간은 인천공항 오후 6시 50분, 귀국은 오후 5시 50분이다.

음식은 중국식이 주류지만 시내 곳곳에 수준급 한식당도 많이 있다. 값은 의식하지 않아도 좋을 만큼 저렴하고, 버스 택시 값도 싸다. 추위를 많이 타는 사람은 731부대 박물관이나 하얼빈 박물관도 볼만하다. 신용카드 사용은 되도록 자제하는 것이 좋다. 통용은 되지만 믿고 사용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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