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가 시작이지요. 하하…. 지구에 사는 8,000종의 새 중에서 이제 고작 2,000종 그렸는걸요. 그리고 올 여름부터는 보이는 그 순간의 느낌을 살려 그리는 진짜 그림을 학생들한테 가르칠까 합니다. 지금까지는 작업에 전념하고 싶어서 제자는 일체 두지 않았는데 그런 욕심도 생기네요."
작년 11월 미국 ‘국가예술훈장(the National Medal of Arts)’을 받은 화가 존 루스벤(80)씨의 여유 있는 한 마디다. 루스벤씨는 백악관에서 조지 W 부시 대통령으로부터 훈장을 직접 받을 때의 기분을 "평생을 바친 일이 마침내 평가를 받는 순간이었지요"라고 말했다. 이 상은 미국 최고의 예술가에게 주는 대통령상으로 예술가라면 꼭 한 번 탐을 낼 만한 영예이다.
"언제까지 그릴 거냐고요? 평생이요. 지금까지 그림에 미쳐 살았던 것처럼 계속 미쳐 있을 겁니다. 제 인생에서 단 한 순간도 그림이 빠진 적은 없었어요. 매일 6㎞씩 산책을 하는데 숲 속을 거닐다 보면 몇 번씩 그리고 싶은 게 나타나요. 종이도 없고 급할 땐 손등에 그리기도 하고, 하하…. 세상 모든 것이 내 눈엔 한 폭의 그림이에요."
20일 전화로 만난 그는 여든이라는 나이답지 않게 또박또박 힘있게 말하는 품이 아주 정정했다. 특히 그림 이야기가 나오면 목소리에 열정이 더해진다.
루스벤씨는 오하이오주 신시내티의 작은 시골 마을 조지 타운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1학년 미술시간에 그림 그리기를 처음 배우고 나서 그날부터 닥치는 대로 무엇이든 그렸다. "너무 재미있어서요." 방과 후면 친구들과 고기잡이와 사냥을 했고 거기서도 물고기와 새를 그리기에 바빴다.
2차 대전에 참전했을 때도 전우들한테 밤마다 만화 그려 주는 일이 주요 일과였다.
그러다가 1950년대 오리 모양 고무찰흙 통 디자인이 뽑히면서 이름이 나기 시작했다. "당시 내 디자인은 50달러도 안 됐어요. 60년 오리 우표 콘테스트에서 상을 타면서 유명해지기 전까지는 그저 배고픈 화가였지요. 그런데 돈보다 중요한 게 있었어요. 그림! 안 먹고 안 입어도 그림만 그리고 살 수 있다면 아무 것도 필요 없었지." 30~40달러에 겨우 팔린 그림들이 지금은 최고 7만5,000달러(약 8,000만 원)를 호가한다.
그는 어린 시절 오하이오강 언덕에 앉아 야생동물을 스케치하면서 제임스 오드본(1785~1851)처럼 되고 싶었다고 한다. 오드본은 숲속에 살면서 새와 갖가지 동물을 세밀하게 관찰해 그림으로 남긴 자연주의자였다. 그는 이제 ‘20세기의 오드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돈은 그에게 그저 그림에 따라온 것이었다. 72년에는 환경보호단체에 오리 프린트 저작권을 주어 200만 달러를 모금할 수 있게 도왔고 오하이오주 자동차 번호판에 붙은 오리 디자인 저작권도 주 야생동물보호국에 넘겨 500만 달러 모금을 촉발했다.
섬세한 터치로 깃털 한 올 한 올까지 극도로 세밀하게 묘사하는 그의 그림은 미국 대통령, 주지사 등 유명인사들의 단골소장품이다. 박물관 소장품으로도 인기가 높다.
루스벤씨는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다고, 이제 시작이라고 말한다. 그가 평생 해 온 ‘예술’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예술은요, 음… 서양인이고 동양인이고 어른이고 애고 할 것 없이 인간이면 누구나 쉽게 느낄 수 있는 표현. 바로 그겁니다. 언젠가 한국도 꼭 방문할 생각입니다. 한국에 날아다니는 새는 어떨지… 참 궁금하네요."
조윤정기자 yjcho@hk.co.kr
박석원기자 spark@hkj.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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