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벽두부터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파동을 겪은 뒤 총리실의 한 관계자는 "실세 총리의 자리는 양날의 칼과도 같다"고 했다. 막강한 힘을 쥐고 있지만 이 힘을 잘못 썼다가는 감당 못할 역풍을 맞을 수 있다는 의미였다.
이해찬 총리는 지난해 6월 취임 이후 노무현 대통령으로부터 내각 통할의 전권을 넘겨받다시피 했고 1·4 개각 때는 각료 제청권을 실질적으로 행사하며 자신의 뜻을 상당부분 반영시켰다. 그러나 직접 추천했던 이 전 부총리가 도덕성 문제로 낙마하면서 이 총리는 제청의 책임론에 시달려야 했다. 한 측근은"이 총리가 앞으로 제청권 행사를 최대한 자제할 것이며 하더라도 상당히 조심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래서 올해 이 총리는 다른 데 신경을 쓰지 않고 내각 통할에 집중하기로 맘 먹었다. 신행정수도 후속 대책, 부안 핵 폐기장 건설 문제, 한일협정 문서 공개에 따른 후속 대책, 새만금사업 등 이해 관계가 첨예하게 부딪혀 애면글면했던 문제들의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위해서다.
특히 올해는 선거가 없다. 난제들을 해결하기에 가장 좋은 때인 것이다. 이 총리는 주변에 "정치를 잠시 잊겠다"고 말하고 있다. 대신 자신의 스타일대로 눈치보지 않고 옳다고 생각되면 그 방향으로 확실히 일을 매듭짓겠다고 한다. 실제 그는 14일 호남고속철의 조기 건설을 요구하는 광주지역 인사들에게 "수 천억원 적자가 날 게 뻔한데 왜 하느냐"며 단칼에 정리했다.
그는 "답답한 청와대에 들어갈 생각 없다"며 대권 의지가 없음을 거듭 밝혔다. 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 그가 자신의 구상대로 얽히고설킨 난제들을 풀어낸다면 대권후보로 급부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에게는 항상 "널리 아우를 수 있는 넓은 아량만 있으면 더욱 큰 정치인이 됐을 것"이라는 아쉬움 섞인 평가가 따라다닌다. 능력만큼 넉넉한 품성을 갖고 있지 못하다는 얘기다.
지난 해에도 이 총리는 찬사와 비난을 한 몸에 받았다. 옳고 그름에 대한 분명한 판단, 정열적인 업무 처리는 ‘역시 이해찬’이라는 말을 나오게 했다. 그러나 이 총리가 일부 보수신문과 한나라당을 공개적으로 비난, 국회가 보름 동안 열리지 못하는 원인을 제공한 대목에서는 "아직도 운동권에 머물고 있느냐"는 비판도 거세게 제기됐다. 야당을 몰아붙이는 그의 태도에 "속 시원하다"는 열렬한 지지세력도 있었지만, 다수의 국민들은 "통합의 정치를 해야 할 총리가 오히려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총리가 시무식에서 꺼내 든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 하되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는 논어 구절이 관심을 끈다. 함께 하되 화합하지 못하는 동이불화에서 벗어나 화합하되 뇌동하지 않는 대인이 되겠다는 의미인데, 이 총리가 그의 신년 메시지처럼 화이부동의 대도를 걸을 지 지켜볼 일이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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