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제 폐지가 눈앞에 보인다. 여야가 2월 임시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기로 지난 달 27일 합의했기 때문이다. 호주제 폐지의 당위성은 새삼 설명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다.
호주제가 있어서 무엇이 문제인가를 묻는 이들, 호주제 폐지를 간절히 원하는 많은 가정의 아픔을 별 것 아닌 것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이들이 많지만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이들에게 어떠한 불이익도 돌아가지 않는다. 또 그들이 말하는 것처럼 호주제를 폐지한다고 해서 아무 문제 없던 우리 가정에 갑작스레 문제가 생기거나 느닷없이 가족이 해체 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
오히려 헌법에 입각한 양성 평등, 부부 평등한 가족제도의 토대가 놓이게 되고 부조리한 법과 관습 때문에 고통 받던 많은 재혼가정과 한부모가정이 웃음을 되찾게 될 것이다. 또한 우리 민법이 평등하고 민주적인 내용으로 거듭나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민법개정과 관련해 보다 질적인 논의가 가능해질 것이다. 즉, 호주제 폐지는 가족법 개정운동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점일 뿐이다. 이는 하루가 급한 시대적 요구이니 만큼 2월 임시국회에서 호주제 폐지를 포함한 민법개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여야 합의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호주제 폐지를 전제로 현재 국회, 대법원, 법무부 등 관계 기관에서는 이후의 대안에 관한 논의가 한창 진행 중이다. 17일 국회에서 열린 ‘호주제 폐지에 따른 신분공시제를 위한 공청회’를 보면 대체로 호주제 폐지 이후 개인별 신분등록제가 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듯 하다. 궁극적으로 이것이 적절한 방향인 것으로 생각된다.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은 실용성과 국민의 법 감정을 고려해 만들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신분’이라는 용어에 관해 논의가 필요하다고 본다. ‘신분’이라는 용어는 전근대적인 관념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현대사회에서 개인의 정체성 및 출생부터 사망에 이르기까지의 변동사항을 공시하는 공문서에 사용하기에는 적절치 못하다. 그러므로 이를 대체할 용어선정까지 아울러 고민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호주제 폐지 이후 대안에 관해 현재 여러 방향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므로 가장 근본적이고 원칙적인 부분만 확인하고자 한다.
우선 개인의 존엄성과 양성평등의 이념을 구현해야 한다. 현행 호적제도의 가장 큰 문제는 호주를 기준으로 개인을 가족에 속하게 한 것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여성차별 등 여러 종류의 차별을 유발했다. 대안은 이를 불식하고, 기존 호적제도로는 수용할 수 없었던 다양한 가족형태를 아우르는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방안들을 수용해야 한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헌법 제10조), ‘가족생활에서 개인의 존엄과 양성평등’ (헌법 제36조)을 민법에서 구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확한 ‘신분’관계를 공시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신분’에 관한 사항을 공문서에 기재, 대외적으로 증명한다는 신분등록제의 목적에 맞도록 이에 대한 효율적인 처리와 관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이어 개인의 사생활이 철저하게 보호돼야 할 것이다. 국민의 신분에 관한 모든 정보를 국가가 관리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 침해에 대한 논란을 불식하기 위해 개인에 대한 정보 수집과 증명 발급 관리 등이 엄격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워낙 민감한 사안인 만큼 국민 정서도 충분히 감안돼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이런 원칙에 입각해 21세기에 맞는 호주제 폐지 이후의 대안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대안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는 것을 이유로 호주제 폐지를 미루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점 또한 분명히 해두고자 한다.
곽배희 한국가정법률상담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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