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19일 인도의 구루 바그완 슈리 라즈니슈가 59세로 죽었다. 구루는 주로 인도의 영적 지도자를 가리키는 말이다. 어원적으로는 ‘무겁다’는 뜻이라고 한다. 만년에는 오쇼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졌던 라즈니슈는 극단적으로 평가가 엇갈리는 인물이다. 추종자들에게 ‘위대한 스승’이었던 그는 비판자들이 보기엔 사기꾼이자 호색광이었다. 본인 주장에 따르면 라즈니슈는 22세 때인 1953년 3월21일 ‘깨달음’을 얻었다. 그 뒤로 그는 힌두교, 자이나교, 선불교, 도교, 기독교에다 이런저런 철학적·심리학적 전통과 명상 요법들을 결합한 신비주의적 가르침으로 수많은 추종자를 얻었다.
인도에 살 때도 라즈니슈의 명성은 그 나라 바깥에까지 퍼져 있었지만, 그가 국제 저널리즘에 자주 오르내리게 된 것은 1981년 미국으로 이주한 뒤부터다. 미국으로 건너간 공식적 이유는 건강이 악화해 치료를 받기 위한 것이었지만, 탈세 혐의로 인도 정부로부터 기소될 위험에 놓이자 몸을 피한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라즈니슈와 그 추종자들은 오리건주 와스코 카운티에 정착해 신앙공동체를 꾸리고 국제 선교를 본격화했다. 한 때 전세계의 라즈니슈센터는 600개가 넘었고 회원 수도 20만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 이주는 라즈니슈에게 몰락의 첫걸음이기도 했다. 신앙공동체 주변 토착민과의 갈등은 이런저런 소송으로 이어졌고, 라즈니슈의 최측근 인사들이 잇따라 각종 범죄에 연루됐다. 마침내 라즈니슈 자신도 이민법 위반으로 기소됐다. 인도인 추종자들이 미국 영주권을 얻도록 그들을 미국 시민들과 위장결혼 시킨 데다, 그 자신 이민서류에 허위사실을 기록했다는 혐의였다. 그 즈음 라즈니슈가 여성 추종자들과 난교를 일삼는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라즈니슈는 미국을 떠나는 조건으로 석방되었고, 인도로 돌아온 지 세 해 만에 죽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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