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을유년 휘호는 혼(魂)이다. 그는 기자와 만나자마자 대뜸 "예술가는 자신의 혼이 깃든 작품을 함부로 팔지 않는다"며 "계파나 당적을 옮기는 일은 혼을 파는 행위"라고 말했다. 다분히 열린우리당과의 합당론을 의식한 발언처럼 보였다.
내친 김에 합당에 대한 의견을 묻자 "벼락부자가 될 생각은 없다"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그는 "당의 정체성을 지키며 긴 안목으로 차근차근 해 나갈 계획"이라며 "다음 대선 때 외부영입을 해서라도 후보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합당을 하지 않으면 지역당을 벗어날 수 없지 않느냐는 도발적 질문에도 그는 "다들 찌개를 먹자고 해도 혼자라도 청국장을 먹을 권리가 있다"며 "민주당은 반드시 재·보선에서 승리해 3당으로 도약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런 그도 원내 9석의 미니정당이 안고 있는 현실의 벽을 인정했다. 지난해 국보법 논란의 와중에서 발의정족수 10명을 채우지 못해 대체입법안을 독자적으로 내놓지 못한 설움을 얘기하는 대목에선 그의 표정은 처연했다.
그는 13일 민주당 전직 의원 모임인 ‘이목회’(매월 둘째 목요일 모임)에 나갔다. 이 자리엔 열린우리당에 몸 담고 있는 인사들도 참석했다. 자연스럽게 합당에 공감하는 얘기가 오간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는 "합당을 반대하는 사람은 나뿐이더구먼"이라고 털어놓았다. 그가 이처럼 완강하게 버티는 저변에는 감정적 앙금도 있겠지만 민주당의 가치를 더 높인 이후에 떳떳하게 합당 논의를 하겠다는 전략도 깔려 있다.
그래서 그는 2월 3일 전당대회 때 대표 경선에 다시 출마하기 위해 18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여권의 합당 요구를 외면하고 "지금은 홀로 가야 할 때"라고 외치는 자신의 노선을 전당대회에서 재신임 받기 위해서다.
합당 문제 외에도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있는 숙제도 적지 않다. 그 중 하나가 ‘리틀 DJ’라는 이미지다. 이는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원천이기도 했지만 막연한 거부감을 초래하는 족쇄로도 작용했다. 그는 "3김시대 이후 새로운 리더십이 형성되고 있는 시기"라며 "지금까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입장에서 정치를 해왔지만 이제부터 한화갑의 정치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화갑 정치’를 중도 개혁과 소신으로 설명했다. 현재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경선자금 문제도 넘어야 할 산이다. 그는 지난 주(12일)에도 공판에 다녀왔다.
그는 지금 제임스 베이커 전 미 국무장관의 초청으로 ‘US·아시아네트워크’ 소속 여야 의원들과 부시 대통령 2기 취임식에 참석 차 미국에 머물고 있다.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성공시킨 전략가 칼 로브 백악관정치특보도 만난다. 그가 내 달초 전당대회라는 작은 풍랑은 물론 앞으로 정치권에 밀어닥칠 변화의 태풍을 헤쳐나갈 항해도를 가져올 지 주목된다.
조경호기자 sooy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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