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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단’ 동인들 20년만의 모임/ "早老 말자던 그때 약속 지켜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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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단’ 동인들 20년만의 모임/ "早老 말자던 그때 약속 지켜냈네"

입력
2005.01.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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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인모임은 솔직히 김원일이랑 몇몇이 술 먹고 싶어서 모인 거지."(전상국)

"나는 술 먹고 있을 때 자기는 졸고 있었으면서, 뭐. 한 명도 죽지 않고 이렇게 모인 게 중요해."(김원일)

"전상국이 도망가면 ‘야, 재 소설 쓰러 간다’고 했지. 근데 그때 참 좋은 소설 많이 나왔어."(현기영)

18일 서울 인사동의 한 밥집에 머리가 허옇게 센 소설가 김국태 김성홍 김용운 김용성 김원일 이동하 이진우 유재용 전상국 최창학 한용환 현기영씨가 모였다. 1979년부터 80년대 초반까지 30, 40대의 나이로 문단을 주도하며 해방 이후 최초의 소설동인지 ‘작단’(作壇)을 3호까지 냈던 이들이 다시 만나기까지는 꼬박 20년이 흘렀다.

시골 제사에 참석하느라 빠진 김문수, 멀리 경남 김해에 사는 김성홍씨를 뺀 12명이 참석한 자리는 술 몇 순배가 돌자 이내 얼큰하고 흥겨워졌다. "김국태 형이 편집장으로 있어서 종로 5가에 있던 현대문학사에 자주 모였는데, 1950년대 작가들처럼 조로하지 말고 술자리에서 만나 서로 작품을 평가하며 에너지를 나눠 갖자고 동인을 만든 거에요." 소설가 전상국씨는 동인을 결성한 까닭을 그렇게 회고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소설가 김원일씨는 "그때 우리 ‘작단’이 나오면 신문들이 전면에 도배를 했지. 전상국은 동인지에 실은 단편 ‘우리들의 날개’로 동인문학상을 받았지 않느냐"며 빛나던 그 시절을 되돌아 봤다. "전화 한 통 걸 돈이 없어 빌려 쓰느라 현대문학 사무실을 드나 들었고, 황순원 선생이 제자들에게 5차까지 술 샀던" 지난 세월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도 진하게 묻어났다. "그 시절에는 문단이라는 게 있었어. 문인들이 모일 수 있는 다방 같은 공간도 있었고, 선후배도 있었지"라는 이동하씨의 말에 "내가 현대문학 편집장 할 때는 작가들이 원고료 타서 술 사고 2차는 내가 사고 그랬지"라고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의 형인 국태씨가 응수하고 나선다.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모임을 주도한 유재용씨가 "작단 4집을 묶어내게 다들 당장 6월까지 단편소설 하나씩 만들어 내라"고 주문하자, 전상국씨가 "요즘 뭐 디지털시대라고 하는데, 아날로그시대의 작업인 문학이 갖는 힘, 그 설 자리를 위한 작업이라면 의미가 있다"고 단박에 찬성했다. 79년 동인지 제1호 ‘졸밥’ 서문에 ‘우리가 문학을 사랑함은 우리 스스로가 그 사랑을 뜨겁게 확인하는 일이 자기 긍정과 구원의 길임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라고 적었던 그들다웠다.

그 서문의 맹세를 삶으로 증명이나 하듯 ‘작단’ 동인들은 열심히 소설을 썼다. 60, 70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쉬지 않고 쓰고 있다. 김용성씨는 지난해 장편 ‘기억의 가면’으로 김동리문학상 요산문학상 경희문학상을 휩쓸었고, 전상국씨는 ‘플라나리아’로 2003년 이상문학상 특별상, 김원일씨는 ‘손풍금’으로 2002년 황순원문학상을 받았다. 그들은 여전히 ‘작단’의 문학청년들이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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