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신도시엔 두 개의 카페촌이 있다. 시내의 카페촌은 밤이면 불빛 요란한 카페들이 모여 있고, 철길 넘어 시 외곽지역의 카페들은 홀 중앙에 커다란 무쇠 난로거나 페치카를 설치해 또 다른 분위기를 자아낸다.
내가 자주 다니던 ‘시인학교’도 그런 무쇠난로 카페 중의 하나였다. 시인 정동용씨가 운영하던 카페인데, 그래도 그 카페 덕에 대관령을 떠나 도시 한 귀퉁이에 와 살면서도 겨울마다 장작을 패보는 즐거움을 누렸다.
웬만한 굵기의 통나무는 그냥 잘라 때지만 너무 굵은 것은 두 쪽이나 네 쪽으로 쪼개야 한다. 그 일을 내가 자원하여 대신 해주었다. 취미생활을 하듯 며칠에 한번씩 장작을 패러 갈 때마다 자동차 뒷자리에 아빠가 장작을 얼마나 잘 패는지를 누구에게든 증명해줄 우리집 두 아이를 꼭 태李?다녔다.
내게는 정말 그만한 겨울 스포츠가 없고, 또 그만한 취미생활이 없었던 것인데 몇 년 전 ‘시인학교’가 그만 문을 닫고 말았다. 지금도 나는 철길 넘어 시 외곽의 카페촌에 갈 때마다 나를 새로 그 집의 ‘장작을 패는 나무꾼’으로 받아줄 카페가 없나 늘 둘러보게 된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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