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행정법원이 17일 발표한 새만금 간척사업 조정권고안의 밑바탕에는 ‘정부가 현재 추진 중인 방식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이 짙게 깔려 있다. 조정안이 받아들여지면 1991년 농지조성 목적으로 첫 삽을 뜬 후 14년째 계속돼 온 새만금 사업이 근본적으로 재검토될 수 밖에 없다.
◆ 조정 내용 = 법원은 조정안을 통해 정부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우선 간척지 사용 용도의 불확실성을 들었다. 농지로 사용하겠다는 농림부의 입장에 대해 재판부는 "쌀이 남아도는 상황에서 갯벌을 파괴하면서까지 농지를 조성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못박았다. 노태우 정부 이후 역대 정부에서 농지가 아닌 복합산업단지 관광단지 항만 등 다양한 용도를 약속하고, 전북도민들은 산업단지나 관광레저단지를 원하는 등 용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재판부는 물막이 사업을 통해 조성된 담수호의 수질악화와 갯벌 파괴도 언급했다. ‘단군 이래 최대 역사’라는 새만금 사업을 ‘제2의 시화호’와 같은 국가적 재앙으로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상 환경단체 입장을 그대로 받아들인 셈이다.
재판부는 따라서 국민적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좀더 신중하고 투명하게 전북도민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머리를 맞댄 채 한번 더 생각해 볼 것’을 제안했다. 재판부는 공사가 94% 완성된 상태에서 법원 결정으로 중지된 일본 이사하야(諫早)만 간척사업을 예로 들며 "새만금 사업은 공정이 50%에도 채 미치지 않은 만큼 이 시점에서 재검토해도 늦지 않다"고 강조했다.
◆ 조정안 수용할까 = 법원이 제시한 것은 말 그대로 권고안인 만큼 양쪽이 이를 반드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환경단체측은 "고뇌에 찬 결정"이라며 재판부의 조정안을 환영했지만, 정부(농림부)는 매우 부정적이다. 공사 중단도 문제지만 민관위원회를 구성해 재논의를 할 경우 사업이 언제까지 지연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전북도는 재판부 기피신청까지 거론하고 있다. 그러나 조정안을 거부해 판결로 갈 경우 재판부가 환경단체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부로선 부담이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각계에서 농지보다는 다른 용도를 언급해 온 만큼 차제에 재검토를 수용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12일 비공개 회의에서 양쪽 의견을 조율했던 재판부는 "조정 성립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을 조심스럽게 내놓았다.
양측이 조정안에 합의하면 법원의 권유대로 새만금 사업을 재검토할 민관위원회가 구성되며 위원회에서 합의를 도출해 원고인 환경단체가 소송을 취하하기 전까지 소송은 중단상태로 남게 된다. 만일 위원회에서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다시 소송이 재개될 수도 있다.
◆ 논란 장기화 = 이번 법원 조정안에 대해 "논의를 다시 원점으로 돌려 놓음으로써 사업이 장기 표류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1999년 민관합동조사단이 구성돼 활동했으나 첨예한 이견만 노출한 채 합의 도출에 실패한 경험이 있는 만큼 새로 설치될 위원회도 이 같은 전철을 되풀이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와 환경단체, 지역주민이 갈등을 해결하지 못해 사법부의 판단에 최종적으로 기댔으나 4년 간의 재판 끝에 공이 다시 자신들에게 넘어온 데 대한 실망감도 적지 않다. 공사중단이 계속될 경우 방조제 유실 등 예상되는 문제점에 대한 대책도 따로 제시되지 않아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김지성기자 jskim@hk.co.kr
■ 새만금 사업 현황
새만금 사업은 전북 군산-부안을 잇는 33㎞의 거대한 방조제를 쌓아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달하는 4만100㏊(1억2,000만평) 규모의 농지와 담수호를 만드는 대규모 국책사업이다. 1980년대 중반부터 검토돼 87년 당시 노태우 대통령 후보의 공약에 포함됐으며 이후 91년 11월 방조제 공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96년 시화호 오염사건으로 간척지 담수호의 수질문제가 대두되면서 새만금 사업에 대한 찬반논란이 빚어졌다. 김대중 정부 시절인 98년 감사원 특별감사, 99년 5월 민관합동조사단의 타당성조사 이후 사업은 2년여간 중단되기도 했다. 2001년 5월 정부가 수질보호를 전제로 새만금 친환경개발 방침을 발표하고 사업을 재개했으나 이후 환경단체들은 사업시행인가처분 취소소송과 3보1배 시위 등을 전개하며 공사중단을 촉구했다.
새만금 4개의 방조제 중 야미도-신시도-가력도 2.7㎞ 구간 최종 물막이공사를 남겨둔 가운데 2003년 6월 서울행정법원은 본안소송 판결 때까지 공사를 중지해야 한다는 환경단체측의 공사중지 가처분신청을 받아들였으나 지난해 1월 서울고법은 다시 공사재개 결정을 내렸다. 현재 바닷물이 흐를 수 있는 배수갑문 공사가 진행 중이다.
이왕구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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