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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SBS ‘러브스토리…’‘유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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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명석의 TV홀릭] SBS ‘러브스토리…’‘유리화’

입력
2005.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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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재벌 2세를 앞세운 드라마가 유행이었다지만, 그것은 사실 SBS의 트렌드였다. SBS의 드라마 편성은 한마디로 ‘지독’했다. ‘천국의 계단’부터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까지. SBS는 프라임타임대에 늘 재벌 2세와 사각관계, 출생의 비밀, 불치병을 설정으로 둔 드라마를 편성했고, 대부분 성공했다. 그런데 올해는 사정이 조금 다른 듯하다. ‘러브스토리 인 하버드’(사진 위)는 조용히 종영했고, ‘유리화’(아래) 역시 저조한 시청률로 고전중이다.

물론 시청자들의 취향이 변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SBS에서도 새로 방영하는 ‘세 잎 클로버’에 자극적인 설정이 없다는 것을 내세우기도 했다. 그러나 사실 변한 건 시청자가 아니라, 이 두 드라마다. ‘러브스토리…’와 ‘유리화’는 작년의 인기 트렌디 드라마들의 성공에서 안일한 설정만을 가져오며, 그 드라마들이 보여준 발전을 다시 후퇴시키고 있다. 작년의 드라마들은 설정은 비슷했지만, 스토리대신 캐릭터의 매력을 적극적으로 부각시키며 트렌디 드라마를 새로운 방향으로 인도했다. ‘발리에서 생긴 일’은 사건보다 심리에 집중하면서 트렌디 드라마를 연애심리극으로 바꾸었고, ‘파리의 연인’은 캐릭터를 디테일하게 다듬으면서 남녀 주인공의 대사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는 드라마를 만들었다.

하지만 ‘러브스토리…’와 ‘유리화’의 주인공들은 뻣뻣하고 재미없다. ‘러브스토리…’의 주인공 현우(김래원)와 수인(김태희)은 언제나 정의감에 가득찬 ‘범생이’들이다. ‘유리화’도 처음에는 동주(이동건)를 바람둥이로, 라이벌인 기태(김성수)를 헌신적인 남자로 그리더니 동주와 지수(김하늘)가 서로 사랑하자마자 기태를 질투심에 불타는 악역으로 바꿔버린다.

그래서 드라마는 남녀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깨닫는 순간 맥이 빠져버린다. 그들은 일편단심이라 라이벌들이 끼여들 틈이 없고, 그러다 보니 시청자들은 쉽게 결말을 예상할 수 있다. 결국 아무리 내용을 늘여도 새로운 갈등을 만들지 못하고 위기에 빠진 주인공들이 이를 해결하는 진행을 반복한다.

이 때문에 ‘러브스토리…’에서는 원래 주인공들과 갈등을 일으켜야 할 정민(이정진)이나 진아(김민)같은 주연급 배우들의 비중이 대폭 줄고, 대신 조연이었던 제이슨(이한우)이 주인공의 운명을 쥐고있는 인물이 되는 당황스러운 일이 벌어졌다. ‘유리화’는 주인공이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부터 드라마가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까지 계속 둘이 대립하는 모습만을 반복한다. 그리고 이 맥 빠지는 스토리를 해결하는 것은 결국 비장의 무기처럼 사용하는 불치병(‘러브스토리…’)과 출생의 비밀(‘유리화’)이라는 설정이다. 하지만 이미 스토리에도, 그 스토리 속의 사람에도 흥미를 잃은 시청자가 보기에 그것은 드라마를 끝내기 위한 수순처럼 보일 뿐이다.

왜 사람들은 뻔하디 뻔한 설정의 드라마를 계속 볼까. 그건 그래도 그 설정에서 끌어내는 갈등과, 그 갈등에 괴로워하는 인간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감정을 이입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 두 편의 트렌디 드라마가 실패한 것은 설정의 진부함이 아니라, ‘사람’과 ‘이야기’는 몽땅 빼고 그 설정에만 매달렸기 때문은 아닐까.

대중문화평론가 lennone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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