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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윗목과 보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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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호철의 정치논평] 윗목과 보일러

입력
2005.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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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연두 기자회견과 함께 노무현 정부 3기가 시작됐다. 노 대통령의 연두회견은 희망과 우려를 함께 갖게 한다.

희망을 갖는 이유는 노 대통령이 회견에서 밝힌 우리 사회에 대한 분석과 처방의 큰 방향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사실 노무현 정부가 집권 3기에 들어 경제 살리기에 올인 할 것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어떤 경제 살리기냐는 점이다. 왜냐하면 우리 경제는 경제위기론에도 불구하고 재벌기업들은 사상 최고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노 대통령이 재계의 압력에 굴복해 단순히 양적인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있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회견에서 우리 경제의 가장 큰 문제가 양극화라는 정확한 인식을 보여 줬다. 또 이에 대한 해법으로 현재 잘 나가고 있는 대기업 부문과 중소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동반성장이라는 적절한 처방을 제시했다.

그러나 동시에 원칙적 타당성에도 불구하고 정책대안이 모호해 과연 효과가 있겠는가 하는 우려를 갖게 한다. 그 결과 민주노총과 같은 민중진영은 "위암 환자에 소화제를 처방하는 수준"이라고 비판하고 나섰고 노무현 정부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참여연대와 같은 시민단체들까지도 실망과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현재 한국 사회가 유례 없는 사회적 양극화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이유는 김대중 정부 들어 경제 위기 극복을 위해 불가피하다며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을 무비판적으로 채택한 결과이다. 김대중 정부는 양극화에 대해 아랫목이 더워지고 있기 때문에 윗목도 시간이 지나면 더워질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윗목은 결코 더워지지 않았다. 따라서 노무현 정부가 계승하고 있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술하지 않고 단순한 동반성장 전략으로 사회적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을지 심각한 회의가 든다.

지난 해 최고의 국회의원으로 뽑힌 바 있는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얼마 전 한 시사프로에서 "아랫목을 아무리 덥혀도 윗목이 따뜻해지지 않고 있는 것은 무언가 한국 경제가 구조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근본적인 구조개혁, 즉 보일러 교체가 필요하며 동시에 보일러 교체가 끝날 때까지 얼어죽지 않도록 윗목에 있는 사람들에게 담요라도 갖다 줄 수 있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이야기"라고 주장했다. 한마디로, 아랫목은 따뜻하다 못해 절절 끓게 하면서도 윗목은 갈수록 냉골로 만들고 있는 신자유주의라는 보일러를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동반성장이라는 노 대통령의 처방은 신자유주의라는 보일러는 그대로 두고 윗목용 보조 보일러를 달자는 이야기로 이런 처방이 과연 효과를 거둘 수 있을지 회의가 든다. 단적인 예가 비정규직 문제다. 노 대통령은 직업교육 및 대기업 노조의 양보를 처방으로 제시하는 동시에 파견근로제를 전업종으로 확대하는 비정규직 법안을 국회가 빨리 처리해 줄 것을 당부했다. 이런 인식이 노무현 정부식 양극화 해소책이자 동반성장 방안이라면 여간 걱정이 아니다.

예를 들어 직업교육을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 마치 그들이 직업교육을 덜 받고 정규직보다 노동력이 떨어지고 있기 때문인 것처럼 잘못 인식시킴으로써 그들을 두 번 죽이는 모독행위에 다름 아니다. 나아가 파견근로제를 확대하여 사회적 양극화를 해소하겠다니, 나도 모르게 고개가 절레절레 흔들어진다.

하기야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비정규직으로 만드는 하향평준화도 사회적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해법이라면 해법이기는 하다. 겨울이야 곧 끝나겠지만 서민들의 겨울은 언제나 끝날지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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