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0년 1월17일 스페인 극작가 페드로 칼데론 델라 바르카가 마드리드에서 태어났다. 1681년 졸(卒). 스페인 문학사상 이른바 황금세기의 황혼을 붉게 물들인 칼데론은 바로크시대를 풍미하던 환멸의 정조를 제수이트회의 종교적 감수성에 버무려내며 당대 스페인 연극계를 주름잡았다. 그의 문학세계는 이미 그의 생전에 무수한 모방자를 만들어냈을 뿐만 아니라, 뒷날 슐레겔 형제를 비롯한 독일 낭만주의 문인들에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칼데론은 스페인 특유의 종교극인 성찬신비극의 완성자로 평가되기도 한다.
칼데론은 제수이트회의 제국학교를 거쳐 살라망카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지만, 사제의 길을 접고 문인의 길을 택했다. 그렇다고 그가 성직과 아주 무관했던 것은 아니다. 칼데론은 문필 인생의 대부분을 궁정시인으로 보냈는데, 국왕 펠리페4세는 자신이 총애했던 이 문필가에게 궁정 전속사제라는 명예를 베풀어 성직과 문필을 겸하도록 했다. 주로 궁전의 왕실축제에서 공연된 칼데론의 극은 왕실 소속 건축가와 소품 담당자의 전문적 지원에 힘입어 경탄할 만한 스펙터클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듬직한 보호자였던 펠리페4세가 죽고 카를로스2세가 즉위한 뒤에도 칼데론의 지위와 명성은 여전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읜 뒤 성장기가 그리 순탄치 않았고 젊은 시절에는 전쟁터에서 부상을 입고 동생을 잃기도 했지만, 칼데론의 후반기 생애는 세속적 영예로 그득했다고 할 수 있다.
풍속희극 ‘문이 둘 있는 집은 지키기 어려워’, 성찬신비극 ‘발타사르왕의 만찬’, 국민역사극 ‘살라메아의 촌장’, 철학적 종교극 ‘인생은 꿈’이 칼데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특히 폴란드 왕 바실리오와 그의 아들 세히스문도 사이에 벌어진 권력투쟁의 맥락에 운명과 자유의지라는 형이상학적 주제를 배치한 ‘인생은 꿈’은 문학으로 구현된 당대 철학적 사유의 한 정점을 보여준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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