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일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에서는 병역 신체검사에서 고도 근시와 색맹 판정을 받은 배경 등 병역 문제와 재산 형성 과정에 대한 의혹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허 후보자는 그러나 병역 신검의 시력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답변을 내놓지 못해 불씨를 남겼다.
이날 질의에 나선 열린우리당 양형일, 한나라당 유정복 의원 등은 허 후보자의 병역 신검 당시 시력 기록을 문제 삼았다. 1973년 나안시력 0.06~0.08에 색맹으로 보충역(방위병) 판정을 받았던 허 후보자가 84년 경찰에 임용되면서 ‘나안 0.3 이상에 색맹이어서는 안 된다’는 기준을 어떻게 통과했느냐는 것. 한나라당 서병수 의원은 "결국 병역비리 아니면 경찰임용 비리가 있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허 후보자는 "경찰 임용 때나 미 연방수사국(FBI) 훈련 등 많은 신검에서는 정상으로 나왔다"며 "요즘은 0.2 정도의 시력에 색맹도 정상이다"며 경찰임용에서의 비리 의혹을 일축했다.
그는 이어 병역 신검과 관련해 "현역과 보충역 경계선쯤 되는 시력으로 알고 있었는데 보충역 판정이 나왔다. 고도 근시라거나 색맹으로 기록됐다는 사실은 이번에 인사청문회를 준비하면서 병적기록표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해명했다. 이에 의원들이 "그렇다면 병역 신검이 엉터리였다는 얘기냐"고 따지자 허 후보자는 "(병역 신검) 판정관의 문제는 저로서는 어떻게 된 것인지 모르겠다"고 질문을 비켜갔다. 그러나 70년대 병역 신검 과정이 현재보다 다소 허술했을 가능성을 감안하더라도 병역 신검 결과가 경찰 신검과 너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어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이날 인사청문회를 관람했던 회사원 정모(33)씨는 "그렇다면 당시 군의관이 무슨 천사라도 되길래 멀쩡한 사람을 고도 근시에 색맹으로 판정해 줬다는 말이냐"고 꼬집었다.
허 후보자가 보충역으로 방위병 생활을 하며 대학에 다닌 문제도 도마에 올랐으나 허 후보자는 "24시간 근무 후 48시간을 쉬어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으며 규정상 문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허 후보자는 이어 부동산 투기 의혹에 대해 "88년 해외 파견 직전 집을 판 여윳돈을 아는 분에게 맡겼더니 산골짜기의 임야를 사 놨던데 오히려 본전도 못 찾고 처분했다"고 해명했다. 또 부인 명의의 비상장 주식 매입에 대해서는 "은행이자보다 낫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또 잘 아는 분의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해 도와주는 차원에서 샀으며 역시 현재 가격은 매입가에도 못 미친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박찬숙 의원은 "상가 임대사업자인 부인이 99년부터 국민연금 지역가입자 의무가입 대상이 됐는데도 지난해 4월까지 5년간 납부금 200만원을 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허 후보자는 "외환위기 여파로 임대료도 제대로 받지 못했고, 국민연금 납부대상인지를 모르고 있다가 통보를 받은 뒤부터 바로 납부했다"며 "잘못된 것이 있으면 시정하겠다"고 대답했다.
진성훈기자 bluejin@hk.co.kr
■ 겉핥기 추궁 ‘면죄부 청문회’
14일 국회 행자위의 허준영 신임 경찰청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맥이 빠진 모습이 역력했다. 이미 언론 등을 통해 제기된 의혹들에 대한 추궁이 나오긴 했지만 ‘수박 겉 핥기’에 지나지 않았고 겨우 4시간50여분 만에 싱겁게 끝났다.
특히 일부 의원들은 허 후보자가 쟁점 의혹을 명쾌히 해명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옹호성 발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국회 안팎에서는 "여당은 여당이라 봐주고, 한나라당은 허 후보자가 대구 출신이라서 봐준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열린우리당 박기춘 의원은 병역 및 경찰임용 문제와 관련, "현역으로 갈 줄 알았는데 보충역이 되는 경우도 있고 또 보충역으로 되는 줄 알았는데 현역으로 가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고 말했다. 허 후보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다"고 한데 淪?변호였다. 박 의원은 또 "허 후보자는 자기관리를 잘했으며 한 두 가지 흠도 이해할 수 있는 정도"라고도 했다. 같은 당 서재관 의원도 "현역병과 보충역의 판정기준에 색맹 여부는 해당되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색맹 여부를 몰랐다는 것은 사실로 생각된다"고 엄호했다.
한나라당 곽성문 의원도 "재산문제는 해명이 됐다고 본다"며 "허 후보자는 충분히 자질을 갖췄고 검증이 됐다고 생각한다"고 추켜세웠다. "지나온 면면을 보니 정말 훌륭한 분"(우리당 심재덕 의원), "외무고시 출신이 청장이 돼서 선진경찰에 대한 기대가 크다"(우리당 강창일 의원)는 발언도 있었다. 의혹에 대한 추궁이 아닌 해명을 유도하는 질문이 많아지자, "이럴거면 청문회를 왜 하나"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한편 허 후보자는 "이제 공직자는 청빈보다는 청부(淸富)가 강조돼야 한다"며 "건전한 재테크로 재산을 늘리자는 생각에서 아내가 주식을 샀다"고 ‘청부론’을 제기하기도 했다.
허 후보자는 국가보안법 폐지 문제와 관련, "광화문에서 인공기를 흔들며 김일성 부자를 찬양하는 경우 처벌해야 하느냐"는 한나라당 이인기 의원의 질문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근거해 제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우리당 우제항 의원이 "미친 사람 하나가 그래도 처벌해야 하느냐"고 다그치자 "그때그때 사안별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녹용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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