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건 전 총리는 차기대권 지지도를 묻는 각종 여론조사에서 부동의 1위다. 지난해 5월24일 대통령 직무대행에서 물러난 이후 단순지지율도 계속 오르고 있다. 지난해말 한국사회여론연구소가 실시한 조사에서는 32.1% 였다. 2, 3위인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19.2%)와 정동영 통일부 장관(10.6%)을 합친 수치보다 높다.
차기 주자들이 지지도를 1% 포인트라도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과는 달리 그는 가만히 있는데도 인기가 올라간다. 거품이라는 지적도 있지만 한동안‘고건 신드롬’은 계속될 전망이다.
새해 포부도 들을 겸 얼마 전 서울 연지동 사무실을 찾았다. 액자에 걸린 우민이란 글자가 눈에 띈다. "백성이 부르면 간다는 뜻이냐(于民)"고 슬쩍 물었더니 정색을 하고 "아니다, 민초가 됐다는 말이지(又民)"라고 말했다. 둘 다 그의 호이건만 애써 후자를 강조한다.
퇴임 이후 한 번도 인터뷰를 하지않았다는 얘기를 못 들은 척 하며 자리에 앉았다. "여론조사를 보니 지성감민(至誠感民)한 모양"이라는 덕담에 "지성은 했는데 감민은 모르지"라는 여운이 남는 답을 했다. 지성감민은 그의 좌우명이다.
그러나 정치 문제 등 민감한 얘기엔 곧바로 손을 내저으며 평범한 일상을 강조한다. 아침 5시에 일어나면 밤 11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책을 읽는 게 가장 큰 일이란다. 실제로 10평 남짓한 사무실은 책에 싸여 마치 책방 창고 같다. 친구들을 만나고 테니스를 치는 게 일상에서의 탈출이라면 탈출이다. 얼마 전 재방송을 시작한 겨울연가를 보느라 간혹 잠을 설친다고 한다.
그런 그의 ‘칩거생활’에 조그만 변화들이 감지되고 있다. 그는 지난 1일 고문으로 있는 다산연구소 홈페이지에 ‘선진화의 미래를 기약하며’라는 글을 실었다. "정치적 리더십 쪽에서 미래비전과 전략을 명확히 제시하고 국민통합을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선진 미래를 이뤄내기란 결코 어렵지 않다"고 했다. 정치권을 비판하는 구절들이 가득했다. 작심한 것일까. 6일에는 김수환 추기경 등 164명과 함께 ‘2005년을 희망 만들기 원년으로 삼자’는 희망제안도 발표했다.
기성 정치권과 차별화하는 메시지를 분명히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행보를 시작했다고 보긴 무리다. 돌다리도 두드려 건넌다는 그다. 올해도 선문답 같은 메시지만 전하며 ‘기대심리’를 부추기는 최소한의 행보만 할 것 같다. 2007년까지는 많은 시간이 남았고 그의 행로가 자신의 의지보다는 정계개편 등 주변상황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2007년이면 69세인 나이, 정치불신에서 파생한 불안정한 인기, 확실한 지지세력과 조직의 부재 등 현실적 벽이 그를 한결 조심스럽게 한다. 그를 잘 아는 한 인사는 "올해도 그는 기다리는 정치를 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3월 미국 하버드대에서 오랜만에 강연을 한다. 무엇을 얘기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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