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으로 추대된 이건희 삼성 회장의 수락 여부가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은둔의 제왕’이라 불리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공개된다는 점에서도 국민적 관심사지만 정부와 경제계의 역학관계에 근본적 변화를 가져올 것이기 때문이다.
과거 개발독재, 군사독재 때처럼 경제가 정치에 종속돼 있던 시절 고 이병철 삼성 명예회장,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이 전경련 회장을 맡았던 것과는 의미가 다르다는 얘기다. 본인이 하기에 따라서는 경제부총리 이상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대통령에 버금가는 뉴스메이커로 등장할 수도 있다. 재계가 이 회장을 선택한 것도 어려운 경제상황을 헤쳐갈 경제계 영웅이 필요하다는 판단에서다.
이 회장 개인적으로는 전경련 회장직을 맡고 싶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 부친인 이병철 회장이 전경련 창립 회장이었고 삼성을 ‘국민 기업’으로 각인 시킬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득실만 따진다면 고사하는 게 합리적이다. 삼성의 ‘약점’이 적지 않은 상태에서 시민단체나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사정권에 들어가는 것이 꺼림직하다는 계산이다.
상속 문제가 말끔하게 처리되지 않은 상황인데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 것도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삼성생명 상장 문제도 걸려있다. 삼성은 지주회사로 전환한 LG나 관련 업종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한 현대차와 달리 고전적 재벌의 형태를 고수하고 있다. 잘못 운신하다가는 이 회장이 불명예만 떠안을 수 있는 것이다. 참모들이 수락에 반대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이 회장의 필요성을 얼마나 절실하게 느끼고 있는지, 삼성의 약점을 어느 정도까지 양해해 줄 것인지가 전경련 회장직 수락의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이 회장으로서는 대선 불법자금으로 사법 처리된 기업인의 사면이나, 과거 분식회계 사면 등도 수락 조건으로 염두에 두고 있을 가능성이 많다. 이 회장이 재계 현안의 ‘해결사’ 역할을 할 경우 재계는 급속히 결집될 수 있다.
그러나 아직 청와대측의 시그널이 없어 이 회장이 주저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정부가 이 회장의 도움을 필요로 하더라도 ‘삼성과 밀월에 들어갔다’는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적극적으로 나오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도 많다. 이 경우 결단은 이 회장의 몫이 될 수밖에 없다. 개인적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국민 경제와 명예를 위해 나설 것인지를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유병률기자 bryu@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