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라는 똘망똘망한 네 살짜리 꼬마다. 2000년 2월생. 회사원인 아빠(마크 올름스테드)와 엄마(로라), 남동생(잔)과 함께 미국 뉴욕주 빙햄튼에 산다. 또래들처럼 동생이랑 장난치고 꽃과 돼지, 곰 인형, 젤리를 좋아한다. 온 방안을 통통 튀고 뒹굴다가도 낯선 사람이 오면 엄마 가랑이 사이로 숨는다.
그런 말라가 뉴욕 미술계에서는 유명인사다. 추상화 실력을 평가받아 작년 8월 뉴욕 소호의 브루넬리 화랑에서 ‘넷’이라는 타이틀로 첫 개인전을 열었다. 여기서 작품 25점이 4만 달러(4,000여만 원)에 팔린 사실이 영국 BBC 방송을 통해 보도(한국일보 2004년 10월 1일자 A25면)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평단에서는 ‘신동 화가’가 나왔다고 난리였다. 현대 추상화의 거장 잭슨 폴록에 빗대 ‘꼬마 잭슨 폴록’이라는 찬사도 쏟아졌다. 반면 ‘애들 장난’이라는 폄하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부모가 "평범한 아이로 키우고 싶다"며 쇄도하는 인터뷰와 촬영 요청을 사양해 말라의 면모는 극히 단편적인 사실 외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AP 통신이 말라와 가족을 만나 꼬마 화가(홈페이지 www.marlaolmstead.com)의 일상과 예술세계를 자세히 소개했다.
말라가 처음 그림을 그린 것은 두 살 생일 직전이었다. 고등학교 때 그림을 그렸던 아버지가 아내의 초상화를 그리려고 오랜만에 붓을 들었는데 딸이 자꾸 방해를 하자 주의를 다른 데로 돌리려고 붓과 물감, 캔버스를 줬다. "가지고 있던 물감이 부족할 정도로 온갖 색깔을 달라고 하더군요." 그렇게 그려낸 첫 작품이 ‘온갖 색깔’이다.
이 때부터 그림 그리기는 말라의 즐거운 놀이가 됐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정원이나 주방에서 그림을 그렸다. 식탁 위에 올라가 제 몸보다 훨씬 큰 캔버스에 물감을 짜 손가락과 주걱으로 문지르고 플라스틱 케첩 병에 물감을 담아 쭉쭉 짜서 뿌리기도 했다. 그림 하나를 며칠이고 그릴 때도 있었다. 준비나 뒤치다꺼리는 모두 아빠 몫. "그릴 때는 놀라울 정도로 몰두하지만 일단 끝냈다고 생각하면 그냥 늘어 놓고 가버리거든요."
어느날 맨해튼에서 커피숍을 하는 아빠 친구가 말라의 그림 몇 점을 가게 벽에 걸고 싶다고 해서 부모는 흔쾌히 동의했다. 며칠 뒤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다"는 전화가 왔다. 엄마 로라는 장난 삼아 250달러를 불렀는데 정말 팔렸다.
화랑 주인 앤서니 브루넬리도 이 커피숍에서 말라의 그림을 우연히 만났다. 이후 말라의 집을 찾아가 여러 작품과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고는 선뜻 전시회를 열어 주었다. "아이들이 추상화 비슷하게 그릴 수는 있지요. 하지만 말라처럼 밑색을 칠하고 덧칠에 덧칠을 하지는 않습니다. 특히 고도로 계산된 듯한 배치와 조화, 생동감 넘치는 색채, 화려한 붓과 손가락 터치는 아장아장 걷는 아기의 작품이라고는 도저히 믿기지 않았어요."
전시회는 대성황이었고 작품은 점당 8,000~1만5,000 달러에 팔려나갔다. 꼬마의 그림을 사려는 대기자가 지금도 60명이나 된다.
미국 서부의 유명한 미술품 소장가 스튜어트 심슨은 "영혼이 담긴 작품"이라고 극찬했고, 미술품 수집가 재키 웨스콧은 "균형미와 색채미가 놀랍도록 세련된 작품"이라고 평했다.
말라의 기법은 날마다 달라진다. 초기에는 칸딘스키처럼 물감을 흩뿌리는 작품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물감을 듬뿍 적신 붓을 캔버스 위에 놓아 물감이 뚝뚝 떨어지게 하는 폴록 스타일을 구사하고 있다.
말라는 커서도 그림을 계속 그릴까? 로라는 "현재로서는 아이가 그림에 싫증을 느끼는 날이 끝이라고 보아야겠지요"라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동생과 뛰놀던 말라는 엄마의 재촉에 딱 한마디를 했다고 한다. "고맙습니다." 그리곤 까르르 웃었다. 말라는 요즘 글씨와 숫자를 배우고 있다.
고찬유기자 jutd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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