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화천은 외진 땅. 굽이치는 산자락과 호수로 막혀 겨울이면 미치도록 추운 곳이다. 한겨울 아침에 수은주가 영하 15도를 가리키면 "오늘은 조금 포근하군" 하며 한시름 놓는 곳이 화천이다. 매서운 날씨로 외면 당했던 화천은 분단의 상처가 여전한 곳이다. 휴전선 아래 3개 사단이 주둔하고 있다. 주민들은 "좁은 땅덩이에 이처럼 많은 사단병력이 배치된 곳은 세계에 화천밖에 없을 것"이라고 한다. 관광자원으로 쓸만한 특출한 자연경관도 드물어 그동안 있는 듯 없는 듯 소외돼 왔던 곳이다.
그런 화천이 이제 보란 듯 흥겨운 겨울 축제를 들고 나왔다. 지금껏 이곳의 발전을 붙들고 늘어졌던 약점인 혹한을 관광상품으로 정면에 내걸고서.
30일까지 화천에서 산천어축제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는 짧은 경력의 축제임에도 불구하고 전국에서 손님들이 쇄도하고 있다. 얼음낚시의 짜릿한 손맛을 아는 강태공들은 "얼마나 기다려온 순간"이냐며 기뻐한다.
축제 장소는 화천읍을 막 끼고 돌아 춘천호로 흘러드는 화천천이다. 폭이 한 30m 될까. 그리 넓지 않은 이 하천은 천연 얼음벌이다. 겨울이면 군부대가 물길을 막고 스케이트장을 만들어 ‘전투 스케이트’를 타던 곳. 주민들도 얼어붙은 하천 위에서 썰매를 탔고, 날이 따뜻해져 얼음이 조각나면 장대 하나 들고서 얼음배를 젓던 추억의 놀이터다.
화천천은 전국의 하천 중에서 가장 빨리 두꺼운 얼음이 어는 곳이다. 지금 행사장의 얼음 두께는 30㎝를 넘는다. 바로 옆을 막고 선 산자락을 타고 내린 골바람이 만든 얼음이다. 얼음 아래 물과 바닥이 투명하게 보이는 게 간장빛 같다고 해서 ‘간장 얼음’으로 불린다. 기포가 많아 잘게 부서지는 하얀 얼음과는 급이 다르다. 매서운 추위가 만들어낸 쩡쩡한 얼음장이다. "어떻게 이곳에만 얼음이 두껍게 얼었느냐"고 묻자 축제 관계자들은 "손님 맞으려 밤새 온 주민이 부채질해 얼렸다"고 눙친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얼음낚시. 꽁꽁 언 하천에 5,000개의 낚시구멍을 뚫어놓았다. 꾼들은 물론 낚시가 처음인 아이들도 좁은 얼음구멍 속이 궁금하다. 서울에서 온 영준(10)이는 아예 차가운 얼음 위에 엎드려 구멍에 얼굴을 들이민다. 만화경을 들여다보는 듯한 얼음 속 세상. 순간 산천어 한 마리가 구멍 밑으로 지날라치면 "아차" 비명이 터져 나온다.
2시간 동안 4마리를 잡은 김철용(54)씨는 "산천어는 호기심이 많은 놈이라 톡, 톡, 톡, 톡 낚시줄을 건드려줘야 입질을 한다"고 노하우를 말했다. 얼음낚시터 아래에 올해 처음으로 루어낚시터가 등장했다. 긴 줄 휙휙 날리며 물고기를 유혹해보지만 전문 꾼이 아니면 쉽지 않다. 양어장에 산소를 공급하는 물레방아가 이곳에서는 얼음 얼지 말라고 빙빙 돌아간다.
낚시터 주변엔 잡은 고기를 저렴한 가격으로 회를 떠주는 ‘회작업 센터’와 맘껏 구워먹을 수 있는 번개탄 숯불구이터도 마련됐다. 방금 잡은 산천어를 주위 사람들과 나눠먹는 흥겨운 모습은 ‘이게 바로 축제’라는 걸 실감케 한다. 얼음낚시는 금·토·일 주말에만 1만 원씩 낚시대회 참가비를 받고 주중에는 무료다.
낚시에 지루해진 아이들은 아빠 엄마를 졸라 얼음썰매장으로 향한다. 서서 타고, 앉아서 타고, 둘이서 함께 타고. 다양한 썰매를 무료로 빌릴 수 있다. 썰매 대여소 앞에서는 끈 달린 고무물통이 있다. 아이를 태워 빙빙 돌리면 부모도 아이도 신나는 비명을 질러댄다.
얼음썰매장 한 켠에는 눈썰매장도 준비됐다. 이것도 공짜. 눈썰매가 경사진 데를 내려오면 썰매는 얼음 위 저 건너편까지 계속 미끄러져간다. 예쁘게 만들어진 출렁다리 위에서는 ‘콩닥콩닥 봅슬레이’가 간 큰 놀이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작은 골대가 놓여진 얼음축구장에서는 왕년의 축구실력이 필요 없다. 빙판 위에서 공을 차려고 몸에 힘을 주면 벌렁 나자빠지기 일쑤. 살살 종종걸음 걷는 모습은 구경만으로도 흥겹다.
행사장 양 옆에는 푸짐한 화천 인심을 자랑하는 깔끔한 식당 천막들이 늘어섰다. 그 중 눈에 띄는 곳이 ‘외국인 주부 간식코너’. 화천으로 시집온 일본 필리핀 중국 등의 외국인 주부 17명이 모여 특색 있는 친정 음식들을 요리해 내놓는다. 중국식 피망밥 따라저뽀와 일본 라면인 시오라멘, 미소라멘을 팔고 필리핀 주부는 튀김만두인 룸피아를 들고 나왔다.
산천어축제를 돕고 있는 조동인(44)씨는 "관이 주도하는 다른 지역 축제와 달리 주민들에 의해 치러지는 민간축제"라며 "청정 화천에서 청정 산천어 맘껏 드시고 몸도 마음도 깨끗하게 살찌우고 가시라"고 초대했다.
화천나라축제조직위원회 1688-3005
화천=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산천어(山川魚)는 송어와 같은 계곡 윗자락 차가운 물에서만 사는 어종이다. 길이는 20~30cm로 송어보다는 작다. 그 생김새가 예쁘고 우아해서 '계곡의 여왕'으로 꼽는 청정 물고기다. 사실 산천어는 화천이 고향은 아니다. 주 서식처는 백두대간 너머 오색천, 남대천, 오십천 등 강원 영동 지역이다.
화천군이 지역을 알리기 위해 축제를 준비하던 중 눈에 띈 것이 얼음 빙어낚시다. 왜 얼음낚시에 집착하는지 물어보니 겨울철 마땅히 낚을 게 없어서란다. 자디 잔 빙어 대신 묵직한 손맛의 커다란 물고기라면 '장사'가 될 것이라 판단, 수소문한 결과 찾아낸 게 산천어다. 산과 내를 이름으로 하는 산천어는 청정 자연의 화천 이미지와도 맞아 떨어지는 최적의 물고기다. 산천어축제의 인기를 타고 이제 산천어는 화천을 대표하는 물고기로 다시 태어났다. 축제에 쓰이는 산천어는 지역 내의 양식장을 통해 공급한다. 축제 행사장에는 첩첩의 그물이 둘러쳐져 있다. 화천 물에 살지 않던 산천어가 생태계를 교란하는 것을 막기 위해 세심하게 준비했다.
■ 강원의 또다른 재미 | 겨울축제 천국
화천 산천어축제를 시작으로 강원도 곳곳에서 각종 겨울축제가 이어진다. 인제의 빙어축제(www.injefestival.net)도 산천어축제 못지않은 인기 축제. 순박한 산촌문화와 대자연의 정취를 흠뻑 느낄 수 있다. 올해 제8회로 27일 시작해 30일까지 진행된다. 행사장인 인제군 남면 소양호 지역은 설악산에서 흘러내리는 맑은 물과 방태산을 휘돌아 내린 내린천이 합수되는 청정지역. 한겨울 300만 평의 얼음벌이 형성된다. 빙어는 10도 이하의 맑고 깨끗한 물에서만 산란하는 은빛의 투명한 어류. 산채로 머리와 내장까지 먹을 수 있는 깨끗한 물고기다. 빙어축제에서는 빙어낚시대회, 빙어 시식회 등과 함께 빙상볼링, 얼음축구대회, 스노자전거대회 등이 열린다. 눈썰매장과 눈조각 전시 등 다양한 체험행사도 펼쳐진다. 인제군청 문화관광과 (033)460-2082
평창의 대관령에서는 27일부터 4일간 제13회 대관령눈꽃축제(www.snowfestival.net)가 열린다. 도암면 횡계리에 조성된 축제장에서는 서양의 유명 건축물을 옮겨놓은 눈조각전, 얼음성 등 얼음조각전, 눈꽃백일장, 설상 풋살대회, 스노카레이싱 등이 펼쳐진다. 30일에는 찬바람 속에 상의를 벗고 달리는 국제알몸마라톤대회도 열린다. 축제위원회 (033)335-8880
태백산 눈꽃축제(http://snow.taebaek.go.kr)는 올해가 12번째. 21일부터 30일까지 태백산 도립공원 당골광장 일원과 황지 일대에서 펼쳐진다. 국제 눈조각 초청 작품전, 대학생 눈조각 경연대회 등을 통해 눈으로 빚은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특별 눈조각 ‘상상속의 동물과의 만남’에서는 하얀 눈으로 부활한 스핑크스, 유니콘, 히말라야 설인인 예티, 공룡 등을 접할 수 있다. 태백산을 등산한 후 등산로를 슬로프 삼아 내려오는 오궁(오리궁둥이)썰매타기도 잊지 못할 체험이다. 태백시 관광문화과 (033)550-2081. 우리테마투어(www.wrtour.com)는 태백산눈꽃축제에 맞춰 여행상품을 출시했다. 22일부터 30일까지 당일 상품은 2만9,000원. 22, 29일 출발 정동진 일출, 태백선 눈꽃열차와 함께하는 무박2일 상품은 5만9,000원이다. (02)733-0882
속초에서는 22일부터 이틀간 설악의 눈을 주제로 제10회 속초설악눈꽃축제가 열린다. 설악산소공원과 하도문, 학사평 등지에서 펼쳐지며 얼음놀이마당, 설악사진전시회, 하얀 설악산길 걷기, 빙벽등반대회 등이 진행된다. 속초시청 관광과 (033)639-5189
이성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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