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된 ‘제3의 길’도, 우파에 뿌리를 둔 ‘뉴 라이트’도 아닙니다. 묵묵히 합리적 중도의 길을 걸어온 사람들이 중도의 목소리를 내보겠다는 겁니다." 중도주의를 표방하는 학술모임 ‘신(新) 중도포럼’의 창립준비 간사를 맡고 있는 연세대 동서문제연구원 김우준(48) 교수는 1970년대 말 80년대 초 대학을 다녔지만 학생운동 경험이 전혀 없는 ‘비운동권’ 출신이다. 포럼에 참여의사를 밝힌 동료 학자들도 평소 정치나 사회참여와는 거리를 두었던 얼굴들이다. 그러므로 굳이 포럼의 성격을 규정하자면 그의 말대로 "조용히 학교에서 공부만 하던 건전한 중도주의자들이 건전한 사회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모이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대 정치학 박사 출신인 김 교수는 "보수와 진보, 우파와 좌파 등 특정계층을 대변하는 이데올로기로는 복잡한 현대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데도 우리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적 대립과 편가르기가 여전히 심각하다"며 "보수와 진보의 취약점과 단점을 보완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중간’에서 해결점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우리가 거창하게 이야기하는 이데올로기(이념)는 사실 좁은 의미로는 ‘특정계층의 아이디어’일 뿐"이라며 "복잡 다양한 계층으로 구성된 글로벌 시대의 현대국가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보수, 진보 노선으로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라고 덧붙였다.
그래서 합리적인 해법을 찾기 위해선 좌, 우로 치우치지 않은 중도주의자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포럼이 표방하는 ‘신 중도’ 개념 역시 보수에 대한 반성, 혹은 진보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된 중도가 아니라 ‘순수 중도주의자들에 의한 중도적 해법제시’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예컨대 전향한 386 운동권 출신들이 주도하는 ‘자유주의연대’는 기존 이념에 대한 반발이 큰 나머지 전통적 보수의 가치로 치우친 측면이 있다"며 "지나치게 자유주의를 강조하다 보면 자유경쟁과 효율성의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사회정의와 형평성, 소외계층보호, 지방분권화 등의 문제는 등한시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어떤 이념적 스펙트럼에도 치우치지 않고, 특정한 정치·사회적 이해관계도 없는 순수중도의 시각에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폐쇄적인 ‘그들만의 학술모임’을 지양하고 주요 사회이슈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포럼을 만들 계획이다. 당장 이달 말 포럼이 정식 발족되면 4대 개혁입법안 논란에 대한 입장을 공식발표하고, 매달 한번씩 정기 공개 학술모임을 통해 노사, 빈부, 교육, 환경문제 등 사회 갈등의 주요현안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법과 대안을 제시해나갈 생각이다.
그는 "지난해 대통령탄핵과 신행정수도 위헌결정 등 국가사회적 대혼란을 지켜보면서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주변에서 월급 받으면서 편하고 조용하게 살지, 뭐 하러 난장판에 뛰어드느냐는 만류와 충고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중도만이 해결의 길이라는 확신이 있기에 용기를 냈습니다."
글 변형섭기자 hispeed@hk.co.kr 사진 오대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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