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히틀러’ 독일서 부활?
아돌프 히틀러의 최후를 다룬 독일영화 ‘몰락(Der Untergang·사진)’을 둘러싼 논란이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가을 독일에서 첫 선을 보인 이 영화는 지난 5일 프랑스에서 개봉되자마자 큰 분노를 샀다. 독재자의 잔인함을 멀리한 채 인간적인 면모만을 부각시켰다는 것이다. 프랑스 평론가들은 "전후 세대의 젊은이들이 전쟁 범죄자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 보도록 오도하는 영화"라고 지적하고 있다. 더욱이 유엔은 24일 유대인 집단 수용소 해방 60주년을 맞아 히틀러의 만행을 되짚어 보는 특별회의를 준비하고 있어 이 영화에 대한 비난이 거세질 전망이다.
그러나 정작 독일인의 생각은 다른 것 같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독일인의 70%가 이 영화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일본 산케이(産經)신문이 전했다. 보수 우익인 이 신문은 일본 국내 문제에 빗대 "영화가 히틀러의 이미지를 전환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했고, 21세기를 맞아 독일인들이 과거문제에 거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베른트 아이힝어와 올리버 히르슈비겔 감독이 만든 이 영화는 1945년 5월 베를린이 소련군에 함락되는 최후 12일 동안 히틀러가 지하벙커에서 겪어야 했던 절박했던 상황을 담고 있다. 패배를 시시각각 보고 받고 때론 무기력하게 대응하고 때론 패배감에 광분하는 히틀러의 인간적인 모습을 사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특히 히틀러와 나치 수뇌부가 마지막에 어떻게 비참한 최후를 맞았는지를 동정 어린 시선으로 그려내고 있다.
영화는 지난해 9월 16일 개봉하자마자 금기시 했던 히틀러의 인간미를 부각시켰다는 이유만으로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다. 죽음 앞에서 고민하는 히틀러의 모습은 연민을 일으켜 전국 400개 영화관에서 450만명의 관객이 찾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일간지 타게스슈피겔 등 독일 언론들은 "우리가 ‘벌써’ 히틀러를 인간으로 그려도 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지만 불을 지폈을 뿐이었다.
히틀러 연구가 한스 오토마이어씨는 이에 대해 "독일인은 괴물을 냉정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대중문화비평 웹사이트 M&C는 "유대인 대학살을 거의 다루지 않은 채 히틀러를 독일 역사의 중요한 인물로 탈바꿈 시키려는 천박한 영화일 뿐"이라며 "2월 뉴욕 및 로스엔젤레스 등에서 개봉될 예정이지만 전국개봉은 힘들 것"이라고 혹평했다.
고성호기자 sungho@hk.co.kr
■ "위안부 문제 NHK특집/ 自民 간부가 왜곡 압력"
일본 집권 자민당의 유력 정치인들이 공영방송 NHK에 압력을 행사해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특집프로그램의 내용이 바뀌어 방송됐던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아사히(朝日)신문에 따르면 나카가와 쇼이치(中川昭一) 경제산업성 장관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자민당 간사장 대리가 지난 2001년 1월 NHK 방송총국장, 국회대책 담당 국장 등을 의원회관으로 불러 "편향된 내용"이라며 방송중지 또는 프로그램 수정을 요구했다.
‘전시성폭력을 묻는다’는 제목의 이 프로그램은 2000년 12월 도쿄(東京)에서 국제 민간단체들이 열었던 ‘여성국제전범법정’의 전 과정을 담은 것이었다.
이 모의법정은 "일본군에 의한 강간과 위안부제도는 ‘인도에 반하는 죄’"라며 히로히토(裕仁) 천황에게 유죄판결을 내렸고 우익단체가 NHK에 방송중지를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던 상황이었다.
나카가와는 당시 위안부문제 등의 교과서 기술이 편향돼 있다고 주장하는 ‘일본의 전도와 역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 대표였고 아베는 사무국장이었다.
이들은 방송 하루 전날 NHK 간부들을 불러 "공평하고 객관적인 프로그램으로 만들라"며 "그렇게 못하겠으면 방송하지 말라"고 다그쳤다.
NHK 간부들은 "국회에서 NHK 예산이 심의되는 때 정계와 싸울 수 없다"며 내용 변경을 지시, 천황 책임 판결을 삭제하고 이 법정에 비판적인 전문가 코멘트를 추가해 방송했다.
이 같은 사실은 당시 이 프로그램 담당이었던 제작국 프로듀서가 2004년말 사내 ‘법령준수위원회’에 "방송내용에 대한 정치개입"이라고 내부고발하면서 밝혀졌다.
나카가와 장관과 아베 간사장 대리는 "국회의원으로서 NHK측의 설명을 듣고 할 말을 했을 뿐 정치적 압력을 가한 것은 아니다"고 주장했다. NHK는 "프로그램은 제작책임자가 자주적 판단에 따라 편집했던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그러나 "프로그램 편집에 대해 외부간섭을 배제하고 있는 방송법상 문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도쿄=신윤석특파원 yssh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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