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여고를 졸업하고 공무원으로 근무했다. 첫 월급을 받던 날, 그리도 슬펐다. 그 돈 때문에 내 인생의 가장 황금기를 내가 좋아하는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서 보내야 했으니까. 그렇게 4년,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주경야독으로 고려대 이과대학에 수석입학을 했다. 고교시절 화학물질들의 오묘한 변화에 매료돼 화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이 생각은 끊임없이 나를 유혹했다. 좋아서 하는 공부였던 만큼 전체수석으로 졸업하는 영예도 누렸다.
만 서른 살에 유학을 가겠다고 하니까 가장 격려해 주시던 J 교수님까지도 한사코 말렸다. 공부는 나중에도 할 수 있지만, 결혼은 그렇지 않다는 말씀이었다. 연구소에 자리를 주선해 줄 테니까, 일하면서 결혼도 하라는 것이었다. 진지하게 고민했으나 내 결론은 그 반대였다. 공부는 더 큰 세상에 나가 마음껏 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에 관한한 내 판단이 옳았다. 미국 브라운대에서 삶의 동반자인 남편을 만났고, 우리는 나란히 박사학위를 받았다.
여성이 과학인으로 활동하기 위해서는 남편과 가족의 적극적인 지지가 필요하다. 때로는 밤늦도록 일해야 하고, 국내외 출장으로 집을 비우기도 하며, 또 너무 몰입하다 보면 아이까지도 까맣게 잊어버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언젠가 이런 삶에 잠시 회의가 들어 별명이 ‘곤충박사’인 열살배기 우리 아이에게 "엄마, 연구를 그만둘까?"하고 말을 흘렸다. 그랬더니 아이는 사려 깊은 눈으로 한참 응시하면서 "나는 엄마가 과학자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요. 연구를 계속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말해 나를 감동시켰다.
지금은 질병의 진단과 치료에 사용되는 스마트 나노입자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암과 같은 표적세포를 찾아가 치료를 하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영상 이미지를 얻을 수 있도록 하는 연구다. 늘 새롭게 공부해서 아이디어를 현실화하는 것이 과학기술인의 기본 역할이다. 그리고 국민들에게 과학기술마인드를 제고하는 일, 과학기술로 국가경제를 부흥시키는 일까지도 담당해야 한다. 이러한 임무에 있어서는 남녀의 구별이 없다.
하지만 여성 과학인이 갖춰야 할 덕목은 더 있다. 연구와 동시에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는 인내와 정신력이다. 그래도 좋아서 몰입할 수 있는 연구분야가 있다면 그 어느 것도 이보다 더 재미있고 삶의 활력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우경자 KIST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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