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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커피 못 마시는 ‘커피의 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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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자 춘추] 커피 못 마시는 ‘커피의 달인’

입력
2005.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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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권유로 10여년 전부터 커피를 완전히 끊은 상태다. 하루가 멀다 하고 마시던 ‘커피의 맛’을 아는 나로서는 커피를 끊는다는 것이 상당히 힘들었으나, 일정기간이 지나자 그 맛은 나란 사람과는 상관없는 맛이라 생각하고 자포자기하게 됐다. 폐암 위기의 골초가 어쩔 수 없이 담배를 끊는 것처럼, 일상생활을 평탄하게 유지하려면 끊는 수 밖에 도리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종 커피를 탈 때가 있다. 사무실로 찾아온 손님이 커피를 요구할 때다. 보통은 그들을 녹차나 주스 쪽으로 유도하는 편이지만 굳이 커피를 고집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축 늘어진 어깨로 작은 부엌으로 가 커피를 탄다. 커피의 맛을 ‘어렴풋이 기억하는’ 또는 ‘거의 잊은’ 수준인 사람으로서 커피를 탄다는 게 얼마나 고역인지 상상해보라. 그건 차라리 성궤를 찾아 떠나는 인디아나 존스의 모험에 비할 만하다.

그런데 10여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면서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렇게 맛도 모른 채 ‘몇 스푼씩’이라는 근거없는 나만의 룰 색깔 냄새 등 부차적인 감각을 통해서 타는 커피에 ‘맛있다’는 정평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어느덧 ‘다방커피의 달인’라는 호칭까지 얻게 되었다.

이렇게까지 된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커피맛을 모르므로 다른 사람들보다 커피를 타는 데 있어서 꽤나 불리한 입장임을 인정하고 있으며, 고로 매번 집중하고 긴장한 채로 커피를 탔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아직 내 분야에서 ‘달인’ 소리를 듣지 못하는 걸 보면, 커피 한 잔을 탈 때 만큼의 노력과 긴장도 없이 자만심으로 청춘을 허비해온 건지도 모르겠다. 말하고 나니 덜컥 지나온 삶이 쑥스러워 자괴감마저 든다. 앞으론 커피를 좀 대충 타야겠다.

김양수 월간 PAPER 기자·만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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