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의 전도사(Peace-maker)인가. 양복 입은 아라파트(Arafat in a suit)인가.
9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 당선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 앞에는 자치 정부 개혁, 무장투쟁 종식,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상이라는 길고 험난한 길이 기다리고 있다. 일단 출발은 희망적이다. 하마스 등 주요 무장투쟁 정파의 불참 호소에도 투표율이 65%를 넘었고 압바스 득표율도 62.3%로 압도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일간 하레츠는 "국민의 위임장을 얻었다고 정통성을 주장할 만한 결과여서 타 정파들이 기반이 취약한 압바스 정권을 흔들기가 어려워졌다"고 주장했다. 뉴욕타임스도 "지난해 11월 야세르 아라파트 사망 당시 지지율이 2%에 불과했던 카리스마 없는 정치인이 이스라엘과의 평화공존을 공약하고도 압도적으로 당선됐다"면서 "이는 팔레스타인 민중이 진정 무엇을 바라는 지가 반영됐다는 의미가 있다"이라고 평가했다.
때문에 부패 척결, 치안조직 일원화 등 내부 개혁엔 강한 지도력이 발휘될 것이란 기대가 나온다. 정치적 경쟁관계에 있는 마르완 바르구티 등 토착 신진 정치 세력도 이 부분에선 압바스와 이해 관계가 일치한다.
무장투쟁 정파의 이스라엘 공격 중지도 의외로 쉽게 풀릴 수 있다. 무장투쟁을 주도해온 하마스가 정치세력으로 전환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디언은 "하마스가 무장투쟁을 포기하고 제도 정치권에 합류하는 중대한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보도했다. 압바스는 2003년 총리 시절 하마스와 무장투쟁 종식 합의를 이끌어 낸 바 있다. 하마스는 9일 압바스와의 협력을 천명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에도 긍정적 전망이 대세다. 그는 93년 오슬로 평화협정, 95년 ‘압바스-베일린 합의’, 2003년 요르단 중동평화로드맵 협상 대표로 나서는 등 협상 경험이 풍부하다. 특히 예루살렘 구 시가에 대한 이스라엘의 권리를 최초로 받아들여 이스라엘 내 평가도 높다. AFP통신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도 압바스의 평화주의에 감명 받아 2003년 그를 백악관에 초대했다"고 보도했다. 압바스는 이번 유세에서 공공연히 ‘부시의 비전 실행’을 다짐했다.
그러나 실반 샬롬 이스라엘 외무장관 등은 그를 ‘아라파트 2호’로 격하하고 있다. 예루살렘포스트는 정보기관 관계자를 인용해 "압바스가 아라파트 노선에서 변화하지 않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안준현기자 dejavu@hk.co.kr
■ 압바스는 누구
"힘이 달리는데 싸움만으로 뜻을 이룰 수 있겠는가. 결국 대화하는 수밖에 없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제2대 수반에 오르게 되는 마흐무드 압바스(69)의 이 같은 소신이 미국과 이스라엘을 움직였고, 전쟁에 지친 팔레스타인을 끌어안았다.
한마디로 압바스는 무장투쟁으로 치달았던 고 야세르 아르파트 수반과는 달리 ‘대화가 가능한 실용주의자’라는 평을 들어왔다.
저명한 학자 마흐디 함디의 말대로 압바스는 "주변에 동료들이 쓰러지는데도 총을 들어본 적이 없는" 지도자였다.
사실 그의 이 같은 온건한 이미지는 인티파다(반 이스라엘 봉기)가 단연 돋보이는 팔레스타인 지도자로는 어울리지 않다. 그만큼 압바스는 팔레스타인 내의 과격파를 아우르면서 그 이상으로 완강한 이스라엘로부터 양보를 얻어내야 하는 험난한 여정을 앞두고 있는 셈이다.
실제 그는 아라파트 사후 대중 앞에선 아라파트의 혁명 유업을 받들겠다고 약속하면서 미국과 이스라엘엔 끊임없이 화해의 시그널을 보내는, 모순적인 정치노선을 보여왔다.
압바스는 지난 40년간 아라파트의 2인자였다. 1950년대 아라파트와 함께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창설했고 65년에는 파타운동을 결성했다. 93년에는 아라파트와 함께 오슬로 평화협정 조인식에도 참가했다.
그는 1935년 영국 위임통치를 받던 팔레스타인의 사페드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48년 이스라엘 건국 후 고향이 이스라엘에 편입되자 시리아로 쫓겨났다. 시리아의 다마스쿠스 대학과 이집트에서 법학을 배웠고 러시아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 부시 "적극 지지" 이도 "기대"
주요 국가 정상들은 10일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 선거에서 마흐무드 압바스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당선된 것을 일제히 환영하면서도 교착 상태인 평화협상 진전과 국민통합의 길이 험난할 것임에 우려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이날 성명을 통해 "압바스 의장의 당선은 팔레스타인 국가 창설을 위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하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협상에 지지를 아끼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부시 대통령은 "새 팔레스타인 지도자는 테러 및 부패와 투쟁 등 산적한 현안들에 직면해 있다"면서 "이스라엘은 가자 및 요르단강 서안지구의 경제 상황을 개선해야 하며, 아랍 국가들도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의 이스라엘 공격을 근절하기 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비에르 솔라나 유럽연합(EU) 외교정책담당 대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이 이번 기회를 잘 활용할 것을 확신한다"며 "유럽은 이들의 친구로서 적극적으로 도움을 줄 것"이라고 환영했다.
이스라엘 관리들도 기대감을 표시했다. 익명의 이스라엘 관리는 "우리는 그들이 테러와 야세르 아라파트 전 수반에 의해 확산된 증오와 죽음의 문화를 포기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장학만기자 local@hk.co.kr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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