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장관 인사청문회 도입 검토 지시이후 정치권과 관가, 여와 야의 반응이 엇갈리고 있다. 이들은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 사퇴파장이 워낙 큰 탓인 지 청문회 도입 필요성엔 공감했다. 그러면서도 정부 관계자들은 "정부가 정치권에 휘둘리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고, 우리당은 야당의 정략적 이용 가능성에 신경을 곤두세워 당장 관련 법을 정비하자는 한나라당과 대조를 이뤘다.
우리당은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시행은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임채정 의장은 10일 "국회 상임위 차원의 약식청문회는 검토해 볼 만하다"면서도 "국무위원 전원을 대상으로 한 인사청문회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박명광 열린정책연구원장은 "도입하더라도 정치공세나 흠집내기로 변질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철저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나라당은 "노 대통령이 잘 생각하셨다"(박근혜 대표)며 법개정 방향, 청문회 방법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였다. 한나라당은 "손해 볼 게 없다"는 반응 속에 노 대통령의 지시 사항인 만큼 여당도 반대하기 힘들 것으로 내다봤다. 이한구 정책위의장은 "청문회를 통해 검증된 내용을 대통령이 존중해야 한다"며 청문회 결과가 일정한 구속력을 가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권철현 의원은 더 나아가 "청문회가 요식 행위로 끝나지 않도록 국회의 임명동의를 거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선 ‘장관은 대통령이 총리의 제청을 받아 임명한다’는 헌법 조항에 위배된다는 반론도 제기됐다.
향후 청문회 방식과 결과의 구속력 등을 놓고 여야간 간단치 않은 논리 대결이 벌어질 것임을 예고하는 정황들이다.
행정부는 공식반응을 삼가면서도 내부적으로 술렁거렸다. 일부에선 이 전부총리 사퇴 파문이 가라앉으면 여권도 청문회에 소극적으로 돌아서 도입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희망 섞인 전망도 나왔다.
교육부의 한 간부는 "인사청문회가 도입되면 흠집 없는 인물을 찾기가 더욱 어려울 것"이라며 "청문회 자체도 신임장관 길들이기 등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재경부의 한 간부는 "인사청문회가 스캔들 폭로나 여야 정쟁의 장으로 변질될 경우 신임 장관의 힘만 빠지고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만 증폭된다"며 "청문회를 도입하더라도 기간을 최소화하고 신임 장관 내정자의 포부나 경험을 들어보는 자리로 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행자부의 한 국장도 "현행 대로라면 득보다 실이 많을 것"이라며 "기존 인사청문회의 문제점을 철저히 살펴보고 보완책을 마련한 뒤 주요 장관에 대해 제한적 범위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산자부의 한 간부는 "장관마다 국회 청문회를 한다는 것은 정략으로 흐를 가능성도 크고 낭비적 요인이 많다"며 "차라리 검증 시스템을 보완하는 것이 더욱 현실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간부도 "총리처럼 고도의 정책결정권을 갖는 자리라면 모를까 정책의 집행 책임을 맡은 장관까지 청문회를 한다는 것은 무리가 크다"고 말했다.
물론 "후보입장에서는 번거롭겠지만 만일의 사태를 예방할 수 있을 것", "인사청문회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공직 후보자들이 자신의 처신을 되돌아보는 긍정적 계기가 될 것"이란 시각도 없지 않았다.
이동국기자 east@hk.co.kr
고주희기자 orwel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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