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험극의 대가 오태석(65)씨가 새 창작극 ‘만파식적’을 21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 무대에 올린다. 2002년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에 이어 3년만이다. 그가 1984년 창단한 극단 목화의 20주년 작품으로 준비를 했는데, ‘백마강 달밤에’로 5개 도시를 돌고 ‘연극 열전’에 참여하느라 해를 넘겼다.
‘만파식적’은 삼국유사에 실린 신화를 씨줄로, 분단의 현실을 날줄로 해 이땅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드러낸다.
주인공 종수는 돌아가신 어머니 석관 곁에 빈 석관을 마련하고 납북된 아버지의 뼈를 안장할 것을 다짐한다. 신라 신문왕의 도움으로 그는 북에서 아버지를 만나나, 북에 있는 이복 동생들은 아버지를 모시려면 남쪽이 더 살기 좋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한다. 서울로 돌아온 종수는 지하철역에서 우산을 빌리고 돌려주는 양심운동을 시작한다.
남을 걱정하고 이웃을 생각하는 사회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산 에피소드를 떠올렸다고 한다. "우산 돌려쓰기는 70년대 처음 지하철이 생겼을 때 일본에서 시행되던 것을 본 뜬 것인데, 우리는 1년도 채 못 가고 일본서는 아직도 살아 남아있어요. 내가 좀 참으면 다른 사람도 좋아질 텐데 말이에요. 정치판이든 노사갈등이든 자꾸 싸움만 붙이는 이기적인 행동들이 결국 문제예요."
환갑을 훌쩍 넘긴 나이에도 젊은이 못지않을 정도로 창작극에 열정을 쏟는 것은 시대의 아픔을 객석과 함께 나누어야 한다는 연극철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브로드웨이의 몸 파는 여자들과 불량배들이 노래하고 춤추는 내용(뮤지컬 ‘아가씨와 건달들’)이 이 나라 이 시대에 무슨 의미가 있나요. 그런 것에 시간 보낼 만큼 우리가 한가한가요." 우리가 갈등하고, 사랑하고, 눈물짓는 것을 표현하는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1년에 반은 창작극, 반은 번역극이 무대를 차지해야 이상적이라고. "좋은 번역극은 자양분이 되기도 하지만, 우리 것의 우수성도 확인시켜 준다"는 이유에서다.
오태석씨는 인터넷과 휴대폰 문화의 발달로 우수한 우리의 글과 말이 망가지는 현실도 안타까워 한다. 소녀의 입에서도 육두문자가 튀어 나오는 세태 속에서 더러워지고 상처 입은 말을 순화하고, 세탁하고, 꿰매는 것이 ‘연극의 기능’이라고 보고 있다. 그래서 3년 전부터 옛 것의 정갈함이 살아 숨쉬는 사투리로 극을 꾸미고 있다. 제주도 사투리가 맛깔스럽게 풀어지는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가 첫 성과이고, 경상도 사투리가 담긴 ‘자전거’가 뒤를 이었다. 이번 ‘만파식적’도 마찬가지. 함경도 사투리다.
그는 "젊은이들이 우리 신화와 역사를 통해 자기 정체성과 자부심을 가졌으며 좋겠다"고 말한다. 그래야 분단도 녹아 사라질 것이고 통일 이후에도 흔들림 없이 자기 색을 유지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좀 도움이 되지않을까. 그러다 보니 자꾸 작품을 들고 나오게 돼요."
‘만파식적’은 문예진흥원이 마련한 기획시리즈 ‘베스트 앤 퍼스트’ 첫 작품으로, 신진 연출가 서재형의 ‘죽도록 달린다’와 함께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과 소극장을 번갈아가며 무대에 오른다. 2월12일까지. (02)745-3966.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 창작극 '만파식적' 연출 오태석
"일제 식민지시대가 끝나고 2, 3년이 지나 이데올로기가 우리 목을 죄기 시작하더니,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어요. 이제 두 개의 대나무가 붙어 소리를 내는 것처럼 남과 북이 합쳐져 평화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만파식적이 우리 손에 쥐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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