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트콤 ‘조선에서 왔소이다’, 드라마 ‘빙점’ ‘영웅시대’의 연이은 조기종영과 ‘베스트극장’의 시간대 이동 등 일관성 없는 편성. 새로 선보인 CI(Coporate Identity·기업통합이미지)에 대한 표절 논란과 시청자들의 거부감. 여기에 보도국장과 ‘고발 전문기자’를 자처해온 기자들의 명품 핸드백 파문까지. MBC가 잇단 악재로 흔들리고 있다.
MBC는 지난해 중반 이후 프로그램 전반의 경쟁력 하락으로 고전해왔다. ‘드라마 왕국’이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일일, 월화, 수목, 주말 드라마 모두 KBS와 SBS에 밀리고 있다. 여기에 수년째 KBS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뉴스데스크’, ‘일요일 일요일 밤에’로 대표되던 예능 프로그램의 퇴조까지 맞물리면서 MBC는 심각한 ‘시청자 외면’에 직면해 있다.
시청률 저하보다 더 큰 문제는 MBC의 대응방식이다. ‘조선에서 왔소이다’는 2004년 말 부분개편에서 시간대 이동을 결정한지 불과 3일만에 급작스럽게 폐지했고, 탤런트 최수지의 8년만의 복귀작으로 화제를 모았던 아침드라마 ‘빙점’은 당초 계획보다 두 달 앞당겨 막을 내렸다. 100부작으로 기획된 ‘영웅시대’의 경우도 2월 중 조기종영이 확정돼 이환경 작가가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시청률과 작품성 면에서 원하는 수준에 이르지 못하는 드라마를 계속 끌고 가는 것이 오히려 전파 낭비"라는 것이 이재갑 드라마국장의 설명이다.
그러나 경영진의 이 같은 밀어붙이기식 편성 뒤집기는 안팎에서 반발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일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지 않고 시청률만으로 닦달하고 있다"는 내부의 불만과 "그동안 MBC 드라마를 봐온 시청자들을 무시하는 태도 아니냐"는 시청자들의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새해 들어 야심차게 내놓은 새 CI도 호응을 얻지 못하고 있다. 법적 판단이 필요한 표절 논란은 차치하더라도, ‘지역명을 병기해야 하는 지방 MBC에 대한 고려를 전혀 하지 않았다’ ‘방송 영상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등 비판이 안팎에서 쏟아지고 있다. MBC는 방송화면 오른쪽 위에 내보내는 워드마크의 알파벳 ‘B’ 속 빨간 네모가 시선을 분산시킨다는 지적이 잇따르자 7일부터 이를 뺐다.
이런 상황에서 강성주 보도국장과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의 신강균 차장, 이상호 기자가 ‘사실은’을 통해 비리의혹을 제기한 ㈜태영 대표와 술 자리를 갖고 명품 핸드백을 받았다가 되돌려준 사건은 MBC에 치명타를 가했다. ‘PD수첩’ ‘시사매거진 2580’ 등 시사 프로그램을 통해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서 왔다고 자부해온 MBC로서는 마지막 자존심까지 손상을 당했다.
이 사건과 관련, 10일부터 참회의 단식에 들어간 최승호 노조위원장은 "MBC는 경쟁력과 신뢰성 모두에 있어서 엄청난 위기에 직면해있다"고 진단했다.
경영진은 사건 파장의 최소화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노조는 이날 낸 성명에서 "이번 사태는 궁극적으로 공영방송에 걸맞지 않은 경영진을 용인해온 데서 비롯됐다"면서 "경영진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후속 처리를 둘러싸고 노사 갈등이 우려되고 있다.
MBC가 겪고 있는 악재의 이면에는 ‘정체성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KBS보다 공영성을 강화할 수도, 그렇다고 SBS보다 상업적일 수도 없는 딜레마가 끊임없이 MBC를 괴롭히고 있다는 것. MBC PD 출신인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는 "과거 KBS보다 덜 관영적이고 SBS보다는 공익성을 추구할 수 있었던 MBC의 장점이 환경 변화로 상당부분 줄어들었다"며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확실하게 해결하지 못한 안일함과 조직원들의 자신감 결여 등으로 장기간 침체되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대성기자 lovelil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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