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03년 1월11일 이탈리아 화가 파르미자니노가 파르마에서 태어났다. 1540년 졸(卒). 화가 집안 출신의 파르미자니노는 고향에서 코레조를 직접 사사하고, 세 해 동안 로마에 머무르며 라파엘로와 미켈란젤로를 사숙한 뒤 독자적 초상화풍을 개척했다. 대표작은 피렌체 우피치미술관에 소장된 ‘목이 긴 성모’다. 이 미완성 유화는 매너리즘(이탈리아어로 마니에리스모) 예술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매너리즘은 고전주의 르네상스 양식에서 바로크 양식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에 유럽 조형예술계를 풍미한 특정 미술양식을 가리킨다. 순수한 예술양식으로서의 매너리즘에는 흔히 ‘매너리즘에 빠졌다’라고 말할 때의 ‘매너리즘’만큼 부정적 의미가 담겨 있지는 않다. 조형예술 용어로서의 매너(이탈리아어로 마니에라)는 역사적·개인적으로 규정된 표현방식, 넓은 의미의 양식이나 스타일을 뜻하기 때문이다. 물론 고전주의자들은 미술 용어로서의 매너리즘이라는 말에다가도 진부성·가식성 같은 부정적 뉘앙스를 씌웠다.
파르미자니노와 엘그레코, 브뤼겔, 틴토레토, 헴스케르크, 로소, 칼로 등으로 대표되는 매너리즘은, 20세기 예술사학자 아르놀트 하우저에 따르면, 고전주의의 너무 단순한 규칙성과 조화를 해체하고 고전주의 예술의 초인격적 규범성을 좀더 주관적이고 암시적인 특징들로 대치하려는 노력이었다. 매너리즘은 한편으로 종교적 체험을 심화하고 내면화하면서 인생을 파악하는 새로운 정신세계의 비전이었고, 다른 한편으로 현실을 의식적·의도적으로 변형시키며 괴상하고 난해한 데 탐닉하는 주지주의였다. 파르미자니노와 그 동료들의 예술 속에서는 고전주의 형식에 대한 거부의 욕망 위에 자연주의와 정신주의, 무형식주의와 형식주의, 구상성과 추상성 따위가 구별하기 힘들 만큼 복잡하게 통일돼 있었고, 이런 이질성의 통일이 이들을 함께 묶는 양식 전체의 기본 공식이었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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