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이 되기 전에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 4대 타이틀 통합 챔피언이 될래요."
지난해 말 최연소 여자복싱 세계 챔피언(국제여자복싱협회·IFBA 주니어플라이급·48㎏이하)에 오른 ‘작은 거인’ 김주희(19·거인권투체육관). 10일 서울 문래동 사거리의 거인체육관에서 만난 그는 적어도 겉보기엔 챔피언, 그것도 격투기의 황제인 권투의 최강자란 말이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가냘픈 몸매에 작은 주먹,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말 그대로 예쁜 10대 소녀였다. 하지만 목표는 당찼다. "지난 7개월 동안 챔피언이 되기 위해 죽도록 뛰었어요. 하지만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요.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김주희는 2006년까지 현재 보유하고 있는 IFBA를 포함, 여자국제복싱협회(WIBA), 여자국제복싱연맹(WIBF), 여자복싱네트워크(WBAN) 등 주니어 플라이급 세계 4대 타이틀 통합 챔피언을 목표로 하고 있다. 욕심이 많은 것이 아니냐고 묻자 "목표가 없는 삶은 무의미해요. 목표를 위해 2년 동안 열심히 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데요."
권투와의 인연은 1999년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 때 시작됐다. 빈혈 때문에 초등학교 3학년부터 해오던 육상을 그만둔 김주희는 다이어트를 위해 복싱을 하던 언니(김미나·23)의 심부름차 우연히 권투장을 들렀다가 글러브를 끼게 됐다. 한국 제1호 여고생복서로 2001년 6월 프로에 데뷔한 김주희는 2002년 11월 대선배 이인영과의 한국 여자 초대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을 벌였다. KO패를 당했지만 투지가 넘치는 파이팅은 팬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 충분했다.
김주희의 권투는 한마디로 ‘깡’이다. 지난달 19일 치러진 멜리사 셰이퍼(미국)와의 챔피언 결정전에서도 김주희는 7라운드에서 상대를 때리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이 부러졌지만 이를 숨긴 채 이를 악물고 원투 펀치를 날렸다. "부상을 당한 것이 알려지면 상대에게 기 싸움에서 지게 돼요. 그래서 참았어요." 김주희의 부상 사실은 다음날 뒤늦게 알려졌고 검사결과 전치 4주의 부상이었다. 챔피언 결정전이 10번이나 연기되면서 마음 고생도 컸다. 그때마다 도봉산과 관악산을 뛰어올랐고 죽어라 샌드백을 쳤다.
남자 선배들과 스파링을 하다 왼팔이 부러졌어도 깁스를 한 채로 산을 뛰어올랐고 한 팔로 스파링을 했다. 죽어라 산을 뛰다 보니 양 발톱도 다 빠졌다. 이 기간 동안 김주희는 3,500㎞의 로드워크와 400라운드의 스파링을 소화하며 때를 기다렸고 마침내 챔피언에 올랐다. "부상했을 때 아픈 것보다 ‘부상 때문에 연습을 못하면 어떻게 하나’란 걱정이 저를 괴롭혔습니다." 김주희 가족은 경비일을 하는 아버지(김산옥·53)와 언니 등 세명. 어머니는 그가 어릴 적 가족을 떠났다. 그래선지 어머니에 대한 말을 아꼈다. 어디에선가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어머니에게 부담이 되기 싫어서란다. 타이틀 획득 후 1주일만에 운동을 재개한 김주희는 이젠 첫 도전을 받았다. 4대 통합 타이틀 도전에 앞서 4월2일 일본의 가미무라 사토코와 1차 방어전을 치른다.
김주희는 이를 위해 15일 일본으로 전지훈련을 떠난다. "챔피언은 12월31일부로 잊었어요. 이젠 다시 도전자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목표를 향해 달릴 겁니다."
박희정기자 h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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