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새도 함께 먹고 살아야지요."
벌써 8년째다. 알만한 사람은 다 안다. 강원 춘천의 삼악산 등선폭포 입구에서 20여 년째 휴게소를 운영하고 있는 ‘등선폭포 지킴이’ 김용운(65)씨는 아침식사를 마치면 ‘땅콩 부스러기 아침상’을 차린다. 머리는 검고 몸통은 붉은 곤줄박이(참새목 박새과)와 박새 등 등선폭포에서 삶을 꾸려가는 산새들을 위한 먹이다.
이곳 텃새들은 가을까지야 곤충 유충이나 나무 열매가 지천이지만 삭풍이 몰아치는 1~3월엔 배를 주리기 일쑤다. 굶주림은 경계본능도 두려움도 무디게 하는 법. 그래서 인간이 우글거리는 휴게실 안까지 날아들곤 했다.
시작은 측은지심이었다. "바닥에 떨어진 튀김 부스러기를 쪼아먹는데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저럴까 싶습디다. 생각 끝에 땅콩이랑 들깨랑 잘게 館?흩뿌려 주었지요."
하루이틀 그러다 보니 정이 들고 어느새 친구가 됐다. 매년 겨울이 다가오면 시장에서 땅콩을 가마니째 이고 와 녀석들이 먹기 좋게 껍질을 벗기고 부수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젠 녀석들이 오기만 기다리지 않고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골골 다니며 맨손으로 산새를 불러 하루 반 되씩 땅콩을 주고 있다.
미물도 인간의 정성은 아는 법. 그가 잠깐 출타라도 할라치면 수십 마리씩 짹짹거리며 모여들곤 한다. 가던 길 멈추고 주머니에 든 땅콩을 손에 놓으면 곤줄박이 몇이 쏜살같이 채간다. 그래서 외출 때마다 주머니 가득 땅콩을 채운다. "귀찮다고 굶길 순 없지요. 등선폭포에서 오래 살다 보니 우린 다 한 식구가 됐어요."
자연의 묘한 이치도 알게 됐다. "처음엔 곤줄박이 20~30마리가 하루종일 줄기차게 땅콩을 채갑디다. ‘고놈들 먹성도 좋네’하고 말았는데 몇 년 뒤에야 이유를 알게 됐어요." 이치는 이렇다. 곤줄박이는 먹고 남은 것을 나뭇가지나 돌틈 등 폭포 주변에 보관해 둔다. 그런데 이 감춰둔 땅콩을 까치가 몰래 훔쳐 먹는 것이었다. "제가 곤줄박이를 먹이고 녀석들이 또 본의 아니게 까치를 먹여 살리는 거죠. 자연의 섭리라는 게 참 묘해요."
산새들이 손바닥에 놓은 먹이를 집어 먹는 장면이 신기했던지 몇 해 전부터는 등산객들도 땅콩을 나눠 준다. 이래저래 이곳 산새들은 겨울나기가 따뜻하다.
춘천=곽영승기자 yskwa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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