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강국으로 급부상한 한국사회의‘속도문화’에 모두가 경탄을 하고 있다.‘더 먼저, 더 빠르게’는 인터넷 앞에서 1초의 기다림도 지겨워 할 정도로 속도를 중시하는 한국사회의‘빨리빨리 문화’를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다. 그러다 보니 그 빠름을 따라가지 못하는 사회의 각 분야들의 느림보 행보에 한국인들은 참을성이 없어졌다. 한마디로 인내(忍耐)하는 덕(德)의 부재(不在)이다.
독일에서 유학할 때 나를 가장 짜증나게 했던 일은 우체국과 기차역에서 줄을 서서 기다리는 일이었다. 우리 같으면 대기표를 만들어 순서를 기다렸을 만한데, 독일인들은 그저 짧은 줄 창구에 서서 기다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운이 좋아서 앞 사람이 빨리 끝나면 다행인데, 창구에서 마냥 이것저것 묻고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날은 열 받는 날이다.
그런데 재미있는 사실은 독일인들 중 그 누구도 그렇게 기다리는 일에 역정을 내거나 인내심을 포기하는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의당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다림을 즐기거나,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다음 기회로 넘기고 유유하게 자기 시간을 보낸다. 한번은 전철이 이유없이 멈췄는데 발을 동동 구르던 사람들은 모두가 외국인이었고, 독일 사람들은 태연하게 신문과 책을 30분을 넘게 보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곧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 속에서 상대의 문제를 참을성 있게 기다려주는 독일 사람들 심성의 표현이었다.
때로는 빠른 것이 유익할 때도 있지만, 너무 빨라서 놓치는 것도 많다. 바쁨의 일상 속에서 내가 왜 이렇게 바쁘게 살아야 하는지 생각하는 시간조차 없이 사는 것보다, 조급하지 않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기 위한 일상(日常)의 도(道)를 즐기는 지혜를 나름대로 찾아보는 것도 한 해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갖고 싶은 덕(德)이 아닐까.
송용민 신부·인천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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