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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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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세상/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

입력
2005.01.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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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어권 문단의 거장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의 소설은 거리를 두고 텍스트를 보려는 독자의 긴장을 허물어뜨리는 힘이 있다. 긴장의 이완 뒤에 독자가 만나는 공간은 현실과 공상의 경계가 흐릿한 낯선 세계다. 낯선 세계에서의 혼몽한 배회 끝에 정신을 차리더라도 때 늦은 긴장이고 각성이기 쉽다. 성과 사랑, 에로티시즘의 ‘알파와 오메가 플러스 알파 쯤으로 읽히는 장편 ‘리고베르토씨의 비밀노트’도 그런 소설이다.

주인공 리고베르토는 결혼 10년 만에 상처하고, 매혹적인 여인 루크레시아와 재혼한다. 하지만 10살쯤 되는 전처 소생 폰치토가 새엄마와 성적인 관계를 맺은 사실이 드러나고 두 사람은 결별한다. 이 가족의 이야기로 전개되는 450페이지가 넘는 소설은 천진난만하고 영악한 악동 폰치토가 따로 사는 새엄마를 찾아가 용서를 비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폰치토에게는 거역하기 힘든 성적 매력이 있다. 새엄마는 그를 경계하지만 순진하기 이를 데 없는 그의 미소와 거리낌 없는 어리광에 일쑤 넘어간다. 폰치토가 의식하든 않든 루크레시아는 의붓아들과의 접촉이 아슬아슬한 성적 긴장과 희열의 반복이다. 신화 속 ‘에로스’를 연상케 하는 폰치토의 ‘작업’ 덕에 리고베르토와 루크레시아는 재결합하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하지만 이 단순한 이야기가 다이달로스의 미로처럼 복잡하게 전개되는 까닭은 인간의 성 심리 메커니즘이 그러하기 때문일까.

리고베르토는 평범한 보험인이다. 그는 루크레시아의 빈 자리를 엽기적 공상으로 메워간다. 그 공상(혹은 실재)은 루크레시아가 성 경험을 고백하는 형식을 띠기도 하고, 두 사람이 함께 경험하는 형태를 취하기도 한다. 공상 속에서 불륜이나 추행은 예사고, 근친상간, 페티시즘, 관음증, 난교 등도 거침없이 등장한다.

자칫 저질스러워질 수 있는 이야기가 품격을 갖추는 것은 리고베르토(또는 작가)의 행위에 대한 정연한 논리와 원칙이 영화 연극 문학 미술의 주요 성취들을 통해 미학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가령 여자의 부드러운 무릎과 팔꿈치에 사족을 못쓰는 리고베르토의 페티시즘론을 보자.

"페티시즘은 인간의 특성을 특이한 방법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 남녀 인간이 자신의 공간을 한정하는 방법이며, 다른 사람과의 차이를 규정하는 방식이며, 상상력과 반집단주의적 정신을 발현하는 방도요, 자유로운 존재가 되기 위한 수단입니다."(p.253) 그는 철저한 개인주의자이자 쾌락주의자이다. 페미니즘을 비판하는 논리 역시 간단하지 않다. "페미니즘은 개념상 집단주의적 카테고리입니다. 일종의 궤변이라는 말입니다. 서로 이질적인 개인들로 이루어진 거대한 무리를 여성이라는 단일 종족 개념으로 싸 안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이질적인 개인들 속에서는 차이 혹은 다름이 클리토리스나 난소와 같은 공통분모만큼이나 중요합니다."(p.99)

그는 유사한 논리로 봉사클럽의 활동을, 애국주의자들의 논리를 공박하기도 한다. 사랑놀이는 창조적인 행위이며 섹스를 둘러싼 아름다운 터부들이 있어 인간은 반항심을, 개인의 자유를,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며 그 터부를 파괴하는 포르노를 공박하는 대목은 숭고하기까지 하다. "(포르노를 즐기는) 당신은 당신의 그 섬세한 충동을, 육체적 욕구를 마구잡이로 찍어낸 공산품에 의지해 풀고 있습니다. 그 공산품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성욕을 만족시켜주는 것 같아도 실제로는 성욕을 억압합니다."(p.341)

20세기의 화가 에곤 실레를 흠모하는 폰치토가 화가의 생애와 작품들을 매개로 새엄마와 벌이는 야릇한 놀이들도 소설을 이어가는 굵은 얼개 가운데 하나다. 요사는 이 이야기들을 회상이나 체험담 편지 일기 단상 등 형식으로 펼쳐놓고는 소설 끄트머리에서야 이야기 대부분이, 밤에는 도색작가로 사는 리고베르토의 공상이었음을 드러낸다. 하지만 공상과 실재의 구분은 작가가 아닌 독자의 몫이다. 최윤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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