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체제를 이르는 말 가운데 파시즘(fascism) 만큼 의미망이 넓고, 그래서 대중없이 쓰이는 용어도 흔치 않다. 국어사전이 정의한 대로 ‘제1차 세계대전후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정권에서 비롯된 독재적인 전체주의’라는 뜻 정도로 쓴다면 아프리카 우간다의 독재자 이디 아민이나 아르헨티나의 후안 페론도 파시스트다. 아시아태평양 국가들을 침략한 일본 제국주의나 박정희 독재를 파시즘 체제라고 불러도 틀렸다는 생각이 별로 들지 않는다. 그 때문에 어떤 사람은 파시즘을 욕설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여기고, 권력을 쥐고 휘두르는 사람이면 모두 파시스트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하지만 프랑스 비시정권 연구로 유명한 로버트 팩스턴 미국 컬럼비아대 명예교수는 파시즘 연구의 걸작이라고 부를만한 ‘파시즘-열정과 광기의 정치 혁명’(원제 ‘The Anatomy of Fascism’)에서 제2차 대전 종전 직전까지 유지된 독일의 히틀러, 이탈리아의 무솔리니 체제가 아닌 권위주의 정권이나 제3세계 독재를 파시즘이라고 불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권위주의 체제나 제3세계 독재는 ‘자유주의 체제에 대한 대중적 환멸의 산물이 아니라 소수 야심가들의 권력 탈취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파시즘이란 용어를 무분별하게 사용하면 정말 파시즘이 부활했을 때 알아차리지 못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팩스턴은 이 책에서 파시즘이란 과연 무엇인지, 그 속에서 지도자와 대중은 어떻게 야합하는지를 독일과 이탈리아의 파시즘 체제가 생겨나서 변해가는 과정을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그래서 내린 결론은 파시즘이란 ‘민주주의 실패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고전적인 폭정이 시민들의 입을 틀어 막은 것과는 달리 파시즘은 대중의 열정을 끌어 모아 ‘내적 정화와 외적 팽창’이라는 목표를 향해 단결시킨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보통사람들, 심지어 인습적으로 착한 사람들의 조력이 없었다면 절대로 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파시즘은 카리스마 넘치는 강력한 지도자가 대중의 두려움과 분노와 적개심을 민족갱생운동으로 전환해낸 철두철미한 ‘대중정치의 산물’이다.
파시즘의 개념을 엄밀하게 정의하려는 시도 끝에 저자는 파시즘의 시대가 1919년 3월 밀라노 상공업연맹 회의실에서 시작해 1945년 5월 히틀러의 자살로 끝난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파시즘이 취하는 모습에는 한계가 없’으므로 ‘똑같은 형태의 재현이 아니라 기능상 동등한 것’으로 생각한다면 파시즘이 부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그리고 그 새로운 파시즘의 가능성을 9·11 테러 이후의 미국에서 본다는 지적은 의미심장하다. ‘미국은 결코 파시즘의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인들에게 인기를 얻는 파시즘이라면 매우 종교적이면서 동시에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배제하거나 9·11 이래로는 반이슬람 경향을 띨 것이다. 새로운 파시즘은 나치의 상징인 스와스티커나 이탈리아 파시즘의 상징인 파스케스를 사용하기보다 시대와 장소에 맞는 형태의 애국주의를 표방할 가능성이 높다.’
김범수기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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