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준 교육부총리는 이쯤에서 거취를 밝혀야 한다. 그 이유는 스스로도 부인하지 않는 도덕성 문제다. 고위공직자는 일반인보다 훨씬 엄격하고 가혹한 도덕성과 청렴성이 요구된다. 하물며 ‘교육의 수장’인 교육부 장관은 더 말할 나위조차 없다. 청와대는 과거의 문제는 서울대 총장을 물러남으로써 면죄부를 얻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비도덕적인 행실이 시간이 지났다고 덮어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고 없던 일이 되는가.
그는 규정상 불허된 기업의 사외이사를 겸직하고 연구비 명목으로 많은 돈을 받았다. 판공비에서 여당 대표 등에 대한 선물비용으로 거액을 사용하고, 고위 공무원이었?부인은 서울대 법인카드로 백화점 등에서 식사를 하고 물품을 구입했다. 이중국적자인 장남은 병역기피 의혹이 제기되자 부랴부랴 귀국했다가 병역의무를 마친 후 한국국적을 포기하고 미국으로 갔다고 한다.
이 부총리가 자신과 가족의 이런 부적절한 처신을 그대로 묻어두고 "과거의 일은 지나갔으니 이제 교육개혁을 위해 한마음으로 뜁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시도교육감과 초·중·고 교장들을 불러놓고 "수능 부정 사건을 계기로 인성교육에 더 신경을 써 주십시오"라고 당부할 수 있을 것인가. "사립학교가 도덕적으로 문제가 많으니 투명성을 높여야 합니다"라고 사립학교 법인을 어떻게 설득할 것이며, "자질과 품성 등을 평가하는 교원평가제를 수용하라"고 교사들을 무슨 명분으로 이해 시킬 것인가.
청와대가 그를 교육개혁의 적임자라고 평가한 것도 정확한 진단이라 보기 어렵다. 서울대 총장시절 학부통폐합과 정원감축, 교수평가제 등을 밀어붙인 것을 인정하는 모양이다. 그러나 배경을 살펴보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당시 교육부 장관은 이해찬 총리였다. 그는 취임직후 대학원중심대학 육성에 심혈을 기울였다. 입시과열을 막자는 취지는 좋았으나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등 주요 대학들이 따라주지 않았다. 모처럼의 교육개혁 기회를 무산시키지 않을까 초조한 교육부는 국립대인 서울대를 몰아붙였다.
‘학부정원을 줄이면 돈을 주겠다’는 발상은 당연히 반발을 불렀다. 학부통폐합과 정원감축에서 인문계는 불필요한 학문으로 매도됐다. 난산을 거듭한 끝에 당시 이기준 총장은 ‘대학원중심대학 육성계획’이라는 것을 내놓았지만 졸속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이 총리의 밀어붙이기식 대학개혁과 수천 억원의 예산을 배정 받기 위한 서울대의 의도가 맞아 떨어진 것이라는 시각이 많았다. 이 총리가 그의 이런 경력을 높이 사 부총리로 제청했을 거라는 분석이 나오는 데는 이런 배경이 깔려있다.
지난 2000년 송자 전 교육부장관도 지금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그는 취임직후부터 가족의 국적문제와 대기업 사외이사 때 취득한 주식의 시세차익, 대학교재 표절 의혹 등 도덕성 시비에 휘말렸다.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는 "더 잘하라는 채찍질로 받아들이겠다"며 해명했으나 24일만에 최단명 교육부장관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물러났다. 교육부는 물론 일선 교육현장은 한동안 마비 상태였다.
교육부 장관은 매우 어려운 자리다. 아무런 흠결이 없고 행정력이 뛰어난 인물이 와도 여간해서는 버티기가 힘들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난달 교육부 장관을 지낸 한완상 신임 대한적십자사 총재 접견자리에서 "내가 보기에 스트레스를 가장 받는 장관은 교육부 장관"이라고 말했다. 안병영 전 부총리도 "매일 지뢰밭을 걷는 기분이었다"고 했고, 이 총리는 교육부 장관에서 물러나면서 "내가 해본 일 중 가장 어려운 일을 했다"고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래서 하는 얘기다. 전교조와 교총 등 교원단체는 물론 시민단체들은 연일 물러나라고 아우성이다. 설혹 당분간은 잠잠해진다고 해도 교육계에 일만 터지면 그들은 쌍심지를 돋우고 나설 것이다. 교육정책의 본질과는 관련 없는 불필요한 논쟁이 들끓고 사사건건 대립과 갈등이 판을 칠 게 뻔하다. 지금도 갈라지고 찢어진 게 교육현장인데 그 혼란을 누가 감당할 것인가. 이 부총리와 청와대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이충재 논설위원 c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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