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아프고, 고달프시지요. 하지만 산다는 것이 없는 길을 만들어가는 것이듯, 희망도 만들어가는 것이에요. 희망도 찾아가는 거예요."
시인 신현림씨는 지난해말 출간한 에세이집 ‘희망 블루스’에서 어려울수록 희망을 더욱 희구해야 한다고 노래했다.
시인의 제안처럼 희망이 을유년 새해의 화두로 떠올랐다. 좀더 나은 내일을 꿈꾸는 것은 새해가 매년 어김없이 선사하는 선물이지만 올해의 희망가(歌)는 유난하다. 거의 대부분의 언론매체들이 신년호에 일제히 희망을 이야기했고, 정치 경제 등 각 분야의 지도자들은 희망의 메시지를 띄웠다. 기자가 참여하고 있는 한국일보 체육부도 신년기획으로 ‘2005 희망을 쏜다’라는 시리즈를 마련하고 남자 골프대회에 도전하는 천재 소녀 골퍼 미셸 위와 2006년 독일 월드컵 최종예선의 기대주 김동진 등 큰 경기를 앞둔 젊은 선수의 포부와 야심을 전하고 있다.
그런데 희망은 있는 것일까. 주위를 둘러보면 좌절에 빠져 힘들어 하는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끝없이 이어지는 불황과 쉼 없는 정치·사회적 갈등, 늘어나는 실업자에 희망을 도둑맞은 그들에게 지난해 대한민국은 건강하지도, 넉넉하지도 않았다.
한국갤럽이 지난해 말 조사한 여론조사에서도 응답자의 74%는 "우리 국민들이 희망을 얼마나 갖고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갖지 않고 있다"고 대답했고, 자신이 매긴 ‘삶의 희망지수’는 54.3점이었다. 1년반전의 조사에 비해 ‘희망이 없다’는 5%포인트 가까이 늘었고, 희망지수는 4점 이상 떨어졌다.
결국 새해 아침부터 절망이 창궐하고 있는 데 희망을 합창하는 역설(逆說)적인 상황이 전개되고 있는 셈이다. 역설은 표면적으로는 모순적이고 불합리하지만, 사실은 그 속에 진실을 담고 있는 말이다. 만해 한용운 선생의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 하였습니다"(님의 침묵)나 "아직 (戰船) 12척을 가지고 있다"(尙有十二)며 노량해협으로 출전하는 이순신 장군의 "必生卽死 必死卽生"(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요, 죽으려고 하면 살 것이다)의 비장한 다짐은 지독한 역설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즐겨 썼던 "맞습니다. 맞고요"도 대부분 ‘그러나’란 의미로 사용됐다는 점에서 역설에 해당한다.
역설에는 마력이 있다. 처음 들을 때에는 논리적 모순 때문에 당혹스럽게 하지만, 다시 들을 땐 구구절절한 설명이 없이도 단숨에 공감하도록 빨아들인다. 대부분 자신을 향한 단단한 각오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지금의 희망가는 희망이 없기에 희망을 더 가지려는 역설이며 늘 역경을 딛고 잡초처럼 일어섰던 한국인의 독종 같은 집념인 것이다.
스포츠는 희망의 전령사다. 고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마라톤 우승은 엄혹한 일제시대에 민족적 자부심을 일으킨 불씨가 됐고,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었다는 외환위기 직후에는 골프의 박세리, 야구 박찬호 선수의 선전이 우울증 일보직전 상태였던 한국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올해에도 큰 경기가 많다. 국내외에서 맹활약중인 선수들이 희망을 마구마구 쏘아 올렸으면 한다.
스포츠에 희망을 거는 것을 두고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헤매는 미망(迷妄)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을 법하다. 그러나 행복해야만 웃는 것은 아니다. 웃기에 행복해질 수도 있다. 지난해 개봉돼 큰 인기를 끌었던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 패전처리투수로 전락해 실의에 빠진 감사용에게 모친이 이런 말을 던진다. "남자가 그게 뭐냐. 어깨 펴고 다녀라."
김경철 체육부장 kc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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