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빅셀의 소설 중에 ‘책상은 책상이다’라는 작품이 있다. 다른 사람과는 어울리지 않는 한 노인이 어느날 스스로에게 변화를 주려고 자기주변의 사물들의 이름을 바꾸어 부른다. 그는 책상을 양탄자라고 부르고,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고, 의자는 시계라고 불렀다. 다음날부터 그는 매일 아침 사진 속에 누워 있다가 잠을 깬 다음 양탄자 앞의 시계에 가 앉아 있는 것이다.
전에도 이 지면에 한번 우리집 강아지 얘기를 했다. 키운 지 10년쯤 되다 보니 조금씩 사람 말을 알아듣는다. ‘치즈’소리만 나오면 빨리 내놓으라고 매달리고, ‘목욕’소리만 나오면 탁자 밑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아 이 녀석 앞에서는 치즈를 ‘후추’로 목욕을 ‘숙제’로 바꾸어 불렀다. 그런지 일년쯤 되자 이젠 또 그 말을 알아듣고 발톱을 세워 매달리거나 탁자 밑으로 숨는 것 같아 다시 치즈를 ‘후추’에서 ‘소금’으로, 목욕을 ‘숙제’에서 ‘산책’으로 바꾸어 부르기로 했다.
그러자 나야말로 그 소설 속에 나오는 영감 같은 생각이 든다. 어떻게 부르더라도 책상은 책상이고 치즈는 치즈인데, 치즈의 멀쩡한 이름을 두고도 강아지 앞에서 치즈를 치즈라고 부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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