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꽃미남 이름의 법칙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최지향기자의 씨네 다이어리/ 꽃미남 이름의 법칙

입력
2005.01.06 00:00
0 0

이름에 준, 민, 빈자만 제대로 들어가 주면 순정만화 남자주인공으로 대강 성공이다. 예를 들면 준서, 정빈, 민우… 이런 이름이야말로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로 여자를 위해 온 몸을 던질 수 있는 결단력,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용기, 반항적인 눈빛을 고루 갖춘 만화주인공으로서 손색이 없다. 만약 주인공 이름이 봉팔 영구 칠득이라고 생각해 보자. 그 순간, 그 만화책은 순정만화이길 포기한 셈이다.

못된 여자들의 이름은 늘 지나치게 세련되고 버터 냄새가 난다. 양순-나희, 한이-세라, 해원-주리, 지은-미란. 이름이 주는 느낌만으로 못된 여자를 골라보라면 대부분이 주리, 세라, 나희, 미란을 골라낼 것이다. 실제로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 ‘미스터 Q’ 등에서 착하디 착한 여주인공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인 악녀의 이름이다. 만일 그녀들의 이름이 순정 혹은 봉순이라고 생각해 보자. 상상이 어렵다. 순정이가 남 해꼬지나 하고 다니거나, 봉순이가 눈을 표독스럽게 치켜뜨고 "기어이, 복수하겠어" 같은 말을 내뱉는다면 선악구조는 흐트러지고 만다.

‘몽정기2’에서 첫번째 웃음이 터진 장면은 모든 학생이 침 흘리는 미남 교생 선생님(이지훈)이 교단 앞에 서서 "제 이름은 강봉구입니다"라고 소개하는 부분이다. 외모는 ‘빈’자 들어갈 것처럼 생긴 꽃미남(봉구님들에게는 매우 죄송합니다)이 도시적인 분위기와는 전혀 거리가 먼 이름을 커밍아웃 하듯이 털어 놓는 순간, 그는 순정만화의 세계를 벗어난다. 그리고는 성적으로 흥분할 때마다 방귀를 뀌어 대는 좀 엽기적이고 지저분한, 영화 ‘몽정기2’의 주인공으로 편입된 것이다. 이 때 그 이름에 조롱을 보내는 이들은 봉구보다는 세련된 이름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이들이고, 차마 웃지 못하는 이들은 이 세상의 봉구들이다.

앙드레 김 선생님이 알고 보니 ‘김봉남’임이 밝혀졌을 때도 사람들은 과도한 웃음을 보냈다. 이름은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때문에 연예인들은 송승복 박충재 김태평이라는 본명 대신 송승헌 전진 현빈 같은 예명을 선택한다.

조롱은 우리보다 열등하다고 생각되는 대상을 향하는데, 어지간히 인격수양이 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인간은 더 가난한 사람, 더 못생긴 사람, 더 못 배운 사람에 대한 조롱을 거부하기 힘들다. 어쩌다 이름도 조롱의 대상이 되었는가 생각하면 좀 서글프다. 우월감에 대한 갈증을, 태어나는 순간 누구나 하나씩 갖게 되는 이름으로 해소하다니 말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