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새해엔 하나에서 열까지 경제를 살리고, 민생을 챙기는데 당력을 쏟겠다"고 강조할 뿐이다.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언급은 극도로 삼간다. 이 문제로 화제를 돌리면 "국민이 원하는 바를 해나가겠다"는 답이 전부다.
그러나 박 대표가 원하든 원치 않든 올해는 그의 정치적 장래를 좌우할 중대 분수령이다. 두 번의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와 올해로 이월된 국가보안법 개폐 등 3대 법안 문제는 박 대표의 리더십을 다시 한번 시험대에 세울 것이다.
게다가 올해부턴 이명박 서울시장, 손학규 경기지사, 강재섭 의원 등 당내 차기 라이벌의 추격전이 본격화한다고 봐야 한다. 박 대표가 안팎의 도전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따라 대선후보 레이스의 첫 관문인 2006년 대표경선의 성적표가 정해질 것이다.
박 대표가 최근 ‘대통령의 딸’, ‘공주’에서 강력한 이미지의 ‘대처’로 변신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엄중한 정치환경을 의식한 데 따른 자구노력이라는 해석이다.
그는 당명 개정과 당 조직 개편에도 강한 집착을 보이고 있다. 주위의 반대가 적지 않았음에도 이를 밀어붙인 것은 이회창 전총재의 잔재를 속히 털어 내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된 듯 하다. 박 대표는 지난해 이해찬 총리의 한나라당 비하발언에서 4대 법안 협상에 이르는 대여투쟁 과정에서 베일에 가렸던 정치력의 일단을 보였다. 4인 회담을 전격 수용하는 결단력과 협상에선 원칙을 지키는 강단을 과시했다는 평도 따른다. 박 대표는 "(상황이 아무리 변해도) 우리가 믿고 있는, 지켜야만 할 가치는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갈 길은 아직 너무나 멀다. 공화당 시절 인권탄압과 정수 장학회 의혹을 매개로 한 여당의 집요한 견제를 넘어서야 하고, 결국은 그를 겨냥할 공산이 큰 과거사 규명의 칼날도 막아내야 한다.
박 대표를 엄호하는 당내 세력도 변변치 않다. ‘박근혜 사람’이라곤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이에 대해 박 대표는 "한 사람이 당을 지배하는 시대는 끝났다"고 말하지만, ‘정치엔 세력이 필요하다’는 현실적 명제를 무시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렇다고 박 대표가 의원들과의 대화와 설득, 즉 스킨십 정치에 그리 적극성을 보이는 것도 아니다.
가장 근본적 문제는 그의 정치적 지향점이 모호다는 사실이다. 국보법 개폐 협상에선 보수편향적 태도를 보이면서 결과적으로 영남권 보수파 의원들과 한 목소리를 냈지만, 그 전까지는 반대의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불과 얼마전까지만 해도 박 대표의 원군은 ‘수요모임’ 중심의 개혁 소장파 의원들이라는 게 정설이었다. 사안에 따라 이념적 스탠스가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 박 대표의 측근 의원은 최근 "우선은 의원들을 한데 묶어 끌고 가는데 역점을 둘 수 밖에 없는 대표의 입장을 이해해 달라"고 토로했다. 고충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이대로 현실에 함몰돼 올해도 ‘박근혜 정치’의 실체를 보여주지 못하면 그의 미래가 불투명해질 수도 있다는 견해가 많다. 권혁범기자 hb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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