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해일이 강타한 스리랑카에 가족을 두고 온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부모 형제들의 생사여부를 알려 주기 위해 불법체류자가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고국행을 택했다.
올해로 한국에 온 지 8년이 된 스리랑카 출신 페마 랄(33·사진)씨는 떠나 올 때 진 빚조차 갚지 못한 상황이지만 고국에 두고 온 가족들의 생사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는 동료들을 대신해 스리랑카로 돌아가기로 했다. 랄씨는 "동료들 대부분이 당장 고국에 달려가고 싶지만 불법체류 신분 때문에 이러지도 저리지도 못하고 있다"며 "다신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겠지만 동료들에게 희소식을 전하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랄씨의 한국생활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그는 1997년 산업연수생으로 입국했지만 곧바로 IMF사태가 터져 2년 동안 일자리도 구하지 못한 채 월세방을 전전한 끝에 불법체류자로 전락했다. 2003년께는 다니던 공장이 갑자기 문을 닫아 3개월치 월급을 떼였지만 불법체류라는 꼬리표 때문에 군소리도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그는 99년 ‘스리랑카 공동체’를 결성해 타향살이에 지친 이들에게 희망을 주는 일에 앞장섰다.
랄씨는 "집에는 연락이 안되지만 해안과 떨어진 곳이라 안전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며 "공동체회원 300명 중 60명 정도가 가족과 연락이 두절돼 직접 피해지역을 찾아 다니며 생사여부를 확인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번 지진으로 남편과 세 자녀를 잃은 비야니(30·여)씨는 랄씨와 함께 귀국하기로 했지만 스리랑카행 여부를 놓고 밤잠을 설치고 있다.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된 가족들이 눈에 밟히지만 정작 고국으로 돌아가면 자신만 쳐다보고 있는 다른 가족마저 생계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외국인 노동자의 집 김해성 목사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가족 걱정 때문에 성탄 선물로 받은 비누 치약 칫솔을 구호품으로 모으고 있다"며 "자격요건이 미비하더라도 인도적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들이 최대한 돌아올 수 있도록 조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형영기자 ahn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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