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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우리 할머니 - 김애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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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한국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 우리 할머니 - 김애란

입력
2005.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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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 입은

꽃잎 오므린 호박꽃 같아요

호박꽃 속에서

벌이 윙윙거리는 소리

들어 보셨어요?

나는 매일 들어요

우리 할머니 입 속에는

벌 한 마리 살고 있거든요

윙윙윙……

남들은 우리 할머니 말

도대체 모르겠대요

그래도 난 다 알아요

뭐라고 하시는지

느낌으로 다 알아요

■ interview/ "아이들 눈 통해 어머니가 보이더군요"

김애란(40)씨의 차분한 목소리는 ‘어머니’ 대목에서 주춤거렸다. 미당 소월의 시 테이프를 끼고 사셨다는 팔순의 어머니가 지난 여름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시나 동시를 쓴 뒤 읽어드리면 그렇게 좋아하시고 격려해주셨어요."

소중한 것의 절실함은 그것을 잃은 뒤에야 제대로 보이는 것이어서, 소중함과 절실함은 결핍감 상실감의 다른 이름인 셈인데, 삶의 아이러니는 그 소중한 깨우침을 매번 사후적으로 경험할 뿐 학습하지도 체화하지도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다. 그 결핍의 몸의 언어가 몸살이다. "많이 힘들었어요. 한동안 시를 못 쓸 만큼요. 그렇게 앓고 난 어느 날 문득 제 아이들의 눈을 통해 어머니가 보이더군요."

터진 살에 새 살이 돋듯 쓰여진 동시가 煐굼?‘우리 할머니’다. 상처에서 나와 그 상처를 치유하는 힘이고 위안인 시와 동시를 두고 그는 "좋고도 미운 연인 같아, 힘들어 내치고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존재"라고 했다. "힘을 주셨으니 가는 데까지 가 봐야죠."

아홉 살, 여섯 살 두 아이의 엄마인 그는 초등학교 교사인 남편과 어린이 문예잡지 창간을 준비하고 있다. "아동문학 작가들의 글과 교사 학생 학부모의 글도 모아 내년 봄 창간호를 낼 계획입니다." 매 계절마다 나올 잡지 이름은 ‘별 줍는 아이들’이다.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1965년 경기 광주 생. 홍익대 교육대학원 졸업

■ 당선소감/ 그립고 소중한 이들이 내 안에 깃든다

유난히도 꽃을 좋아하신 어머니. 뜰 안 가득 꽃을 피우시고 많은 이들에게 꽃 보는 행복을 듬뿍듬뿍 퍼주시던 어머니. 어머니는 가시고 없지만 그 꽃들은 남아 피고 지고 또 피고…

어머니가 저버린 이 삶을 나는 처절하게 견디고 있다. 견뎌야지. 이 뼈 속 깊이 스미는 그리움을, 이 허망함을. 어머니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아이들이 있는 한 나는 치열하게 견뎌야 한다. 이 질긴 허상을.

동시를 쓰면서 나는 행복했다. 가슴 저리게 그리운 어머니와 소중한 내 아이들이 내 안에 깃든 것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거지국 냄새만 맡아도 울컥 솟는 어머니. 딸아이만 봐도 울컥 솟는 어머니. 꽃만 봐도, 김소월 서정주 박목월 이런 분들의 시집만 봐도… 어머니는 도처에 계셨다.

부쩍 작아지신 아버지 꼭 안아드리고 싶다. 내 시가 아버지를 다시 행복하게 해드릴 수 있다면 좋겠다. 어쩌면 전생에 한 몸이었을, 떨어지면 너무 아픈 남편. 언제나 포근한 품으로 안아주고 따뜻하게 손 잡아 재워주는 남편이 고맙다. 남편 말대로 남편을 어머니처럼 생각하며 살면 어머니 안 계신 이 삶을 견디기가 좀 나을 것 같다. 공부한다고 잘 놀아주지도 못하는 못난 엄마 옆에서 저희들끼리 잘 놀고, 책도 잘 보는 영원이 승원이에게 사랑과 고마움을 전한다.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지금까지 온갖 기쁨과 슬픔을 함께한 둘도 없는 영란이와 형제들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시부모님 계신 향적골에 이름 그대로 향기가 쌓이기를 소망하면서…

부족한 글 뽑아주신 심사위워님과 한국일보사에 깊은 감사를 드린다. 열심히 쓰라는 채찍으로 알고 열심히, 진짜 열심히 쓰겠다.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 심사평/ 대상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에 점수

예년에 비해 응모작품 수는 변하지 않았으나, 그 수준은 비교적 낮았다. 신인다운 참신함이나 개성적인 목소리를 만나기 어려웠고, 작품의 완성도에서도 미흡했다. 대체로 동요적 발상이나 어린이의 태도, 어조를 흉내낸 이야기 형태의 산문이 눈에 많이 띄었고, 시적 대상을 설명한다거나 의미가 모호한 작품들도 의외로 많았다. 그 가운데 마지막까지 남은 작품은 '사이다'(이해든), '일학년 할머니'(봉필순), '가방부자'(유은경), '라디오'(박성우), '공원 식구'(조영수), '우리 할머니'(김애란) 등이었다.

이해든씨의 동시는 독특한 개성과 선명한 이미지가 돋보였으나 감각적인 면만 부각시키는 데 그쳤고, 봉필순 씨의 동시는 현실 생활에서 동심을 새롭게 발견한 점은 좋았으나, 표현이 다듬어지지 못한 점이 아쉬웠다. 유은경 씨의 동시는 아이들 삶의 현실을 잘 포착해내었으나 내용이 참신하지 못했고, 박성우씨의 동시는 시적 발상은 재미있고 새로우나 시상 전개에 작위성의 노출되어 신선미를 잃은 점이 흠이었다. 조영수씨는 보내온 작품 수준이 고르고 동시를 빚는 솜씨가 눈에 띄었으나, 특별히 도드라진 작품이 없어 안타까웠다. 김애란씨의 동시는 평이하면서도 비유가 적절하고 시적 의미가 잘 담겨 있으나, 새로운 시적 발견이나 참신성이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이러한 결점에도 불구하고, 결국 김애란의 ‘우리 할머니'를 당선작으로 올리는데 이견은 없었다. 그가 응모한 다른 작품에도 수준작이 있을 뿐 아니라, 대상을 바라보는 시선의 따뜻함과 진지함이 앞으로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을 갖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심사위원= 권오삼 김용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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