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보낸 중·고교 시절 6년 동안 친구들이 우격다짐으로 영어 단어를 쑤셔 넣는 것을 보았습니다. 어떤 친구는 영어가 공포 그 자체였어요. 공부는 재미있으면 안 될까요? 놀듯이 공부하고 놀아도 공부가 되는 책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최근 하버드대에 합격한 박주현(18·미국 세인트 조셉 고교 12학년)양은 그런 고민을 12권짜리 만화책에 담아 출판한다.
박양은 지난 15일 하버드대 합격증을 받아든 뒤 요즘 하루하루가 꿈만 같다. 좋은 대학에 붙어서뿐 아니라 3년간 계속해 온 영어만화 ‘짱글리쉬(좋은 열매 출판사 발행 예정)’집필을 마쳤기 때문이다. 1월 중 발간될 이 만화는 왼쪽 페이지는 영어 원문, 오른쪽은 영어를 해석한 한글로 꾸몄다. 화려한 캐릭터에 고교생들의 배꼽 빠지는 유머, 가슴 찡한 사랑, 선생님을 곯려 주는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엮었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삼촌이 권유해서 쓰기 시작했다. 그림은 전문 만화가가 맡았다.
박양은 지난해 8월 삼육고 졸업을 한 학기 남긴 채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갔다. 아버지가 미시간주 앤드류스대학에 교환교수로 가게 됐기 때문이다. 현지 고교에 편입한 뒤 미국 수능시험 격인 SAT와 에세이, 인터뷰 등을 통과해 하버드대에 합격했다. 내년 9월 입학해 국제정치학을 전공할 계획. 이후 "멋진"국제 변호사가 되거나 유엔 같은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겠다는 포부를 갖고 있다.
박양은 영어 공부를 너무나 힘들어 하는 친구들을 지켜보면서 고 1때부터 만화책 만들기를 구상했다. 초등학교를 미국에서 나온데다 중 3 때 토익 990점을 받았을 만큼 영어에는 자신이 있었다.
박양은 만화책에서 ‘짱민정음’이라는 특이한 발음기호 표기방식을 선보인다. 예를 들면 ‘project’(입안하다)의 발음은 [프로젝트]가 아니라 [ㅍrㅏ젝ㅌ]로 표기하는 식이다. 생생한 원어민 발음을 연상시키기 위한 방안이다.
한국과 미국 교육을 모두 겪어 본 박양은 그 차이를 암기와 이해로 구별했다. "미국 학생들은 외우는 것을 귀찮아 하는 대신 이해하길 좋아하지요. 그런데 한국식 암기 교육의 효과를 보고 놀라고 있어요. 반면 한국에서는 친구들 발표력이 너무 떨어져서 저도 동화되고 말았어요. 며칠 지나니까 떨려서 앞에 나가지를 못하겠더라고요."
박양은 공부를 재미있게 하게 된 것이 어머니 덕분이라고 말한다. "엄마는 어려서 동화를 정말 재미있게 읽어 주셨어요. ‘바이올린 가지고 놀아라’ ‘피아노 가지고 놀아라’ 하셨지요. 이제는 눈치챘어요. 제게 시키고 싶은 게 있으면 그걸 재미있게 만들어 주신 엄마의 깊은 뜻을…. 하지만 이젠 반항하기엔 너무 늦었지요. 책 읽기에 취하다 보니 하버드까지 오게 됐습니다."
박석원기자 s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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