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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6) '늙은 농촌'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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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농업 이것이 살길이다] (6) '늙은 농촌'은 없다

입력
2005.01.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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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4분의 1이 65세 이상으로 전국 최고의 노인 인구비율(24.7%)를 기록하고 있는 인구 5만3,000여명의 경남 남해군. 주민 노령화로 2가구 중 1가구는 농업에도 어업에도 종사하지 않는 ‘비농어가’로 분류된다. 휴경농지는 갈수록 증가해 ‘떠나는 농촌, 무너지는 농촌’의 표본처럼 인식돼온 곳이다.

이 ‘위기의 섬’에 새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인구 감소에다 농산물 수입개방이라는 악재를 극복할 활로를 찾기 위해 남해군은 ‘유럽형 종합레저농원’ 조성이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유기농업 선진국인 오스트리아의 영농 기술을 국내 도입한 ㈜게비스랜드와 함께 이동면 신전 화계 용소 등 5개 마을 100㏊에 2014년까지 종합레저농원을 조성하기로 하는 투자협정을 맺었다. 우선 2006년까지 12만평의 친환경농산물 생산단지를 만들고 이후 가족호텔과 펜션 등 숙박시설, 역사·문화교육장 등을 완비해 지역 모습을 완전히 탈바꿈시키겠다는 야심이다.

땅을 묵히고 있는 지역 농민들로부터 게비스랜드가 농경지를 15년 이상 장기 임차, 현지 노동력으로 생산한 친환경 농산물을 도시 회원에게 택배시스템을 통해 공급하고, 영농체험과 문화탐방 등의 프로그램도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9월 기공식을 가진 종합레저농원은 1차적으로 신전마을 일대 4만2,000평의 농지를 임차해 이중 2만2,000여평에 남해 특산물인 마늘 시금치 자색양파 월동초 등 겨울작물 파종을 마쳤다. 나머지 농지에는 인공 보온시설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섭씨 17도 정도의 지하수를 뿜어 수증기를 발생시키는 ‘수막(水幕) 보온 재배’ 방식의 하우스 6개동에 기능성 쌈채류 등 12종의 신선 채소를 재배, 적겨자를 시작으로 출하를 앞두고 있다. 바로 앞 앵강만에서 하루 두 차례 썰물 때 드러나는 길이 500여c의 갯벌에는 고기잡이 체험장을 만들고 농장 인근 폐교에는 영농체험장과 학습장을 꾸밀 예정이다.

농원 기공 후 3개월 간 500여명의 하루 마을 주민들이 남자 5만원, 여자 2만7,000원의 노임을 받고 농삿일을 했다. 주민들은 트랙터 포크레인 등 장비 사용료와 농지 임차료로 게비스랜드로부터 1억여원을 받아 ‘농한기’라는 오랜 고정관념을 깨뜨렸다.

신전마을 윤명복(59) 이장은 "마을 주민 대부분이 노령이라 힘에 부쳐 땅을 놀리고 있었다"면서 "이왕 놀리는 땅을 임차해주고 힘 닿는데까지 일하면서 돈을 벌 수 있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고"라고 말했다. 이웃 금평마을 부녀회장 임의자(55)씨도 "겨울철에는 딱히 할 일이 없었는데 올해는 한 달 이상 농장에 나와 일을 하니 돈도 벌고 건강에도 좋은 것 같다"며 웃었다.

주민들은 독일어로 ‘자연’을 뜻하는 나투어(Natur)란 이름의 영농조합을 만들었다. 마을 앞에 ‘게비스랜드 농장’이라는 관문을 세우고 새로운 농촌의 모습을 만들어 보이겠다는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하영제 남해군수는 "나투어 영농조합은 기업과 농촌의 결합, 영농신기술과 고령 노동력의 새로운 결합을 보여주는 모델"이라며 "이 같은 농장을 군 전체로 확대해 남해를 세계적인 친환경 농업단지로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남해군은 이 모델이 정착할 경우 정년을 맞은 출향인사들도 고향으로 다시 돌아와 20년 가량은 농업에 종사할 수 있게 돼 자연스럽게 ‘돌아오는 농촌’이 만들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귀농인들을 위한 주택개량사업 계획도 이미 세워놓았다.

게비스랜드 염상열(63) 상임고문은 "육지와 바다가 만나 자연의 신선한 호흡이 살아있는 깨끗한 섬 남해에서 국내는 물론 세계적 유기농 인증기준을 뛰어넘는 자연 그대로의 농산물을 소비자들의 식탁에 올리겠다는 신념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며 "철저한 고객 위주의 작목 선택으로 남해를 유기농 웰빙 농산물의 메카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남해군의 유럽형 종합레저농원 조성 사업이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지역혁신박람회, 한국유기농협회 등의 우수 사례로 선정되면서 나투어 영농조합에는 벤치마킹을 위해 국내는 물론 외국 단체의 방문도 최근 줄을 잇고 있다.

남해= 글·사진 이동렬기자 dy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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