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시장은 다양한 전사(戰士)들이 참여하는 전쟁터다. 유망종목을 발굴하는 애널리스트, 거시경제를 조망하는 이코노미스트, 자산을 직접 운용하는 펀드매니저, 그리고 단기필마로 거액을 주무르는 큰 손들이 각자의 분야에서 서로의 지략을 총동원한다. 이들은 미래를 예측하고 투자해 일반인이 꿈도 꿀 수 없는 거액을 순식간에 따고 잃는다. 이 살벌한 전쟁에 참가해 각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고수’들에게서 을유년 새해의 증시전망을 물어봤다.
◆ 올해 종합주가지수 780~1,150 = 증권가 고수들의 새해 전망은 대체로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보다 둔화하겠지만, 증시는 점차 상승해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를 돌파한다"라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장인환 KTB자산운용 대표는 국내 경제가 상반기 수출증가율 감소와 하반기 내수경기 회복에 따라 전반적으로 4% 정도 저상장을 기록할 것이며, 종합주가지수는 1분기 780~900, 2분기 800~950, 3분기 850~1,000, 4분기 850~1,150으로 점진 상승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종우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은 가계부채 조정이 2분기께 마무리되고 세계경기 회복으로 수출 증가세 둔화도 크지 않을 것이라며 연간 국내성장률을 4.3%로 잡았다. 이에 따라 지수 역시 800~1,150선을 오르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반면 박천웅 모건스탠리 상무는 내수 회복이 수출 증가세 둔화를 상쇄하지 못해 성장률이 3.8%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증시는 채권 등 다른 투자상품보다 수익률 전망이 양호해 지난해보다 20% 가량 오른 최고 1,020포인트까지 갈 것으로 내다봤다.
이형복 한국투자신탁운용 주식운용본부장도 경제성장률이 잠재성장률을 밑도는 3%대 후반에 머물 것으로 보면서도 증시는 꾸준히 올라 4분기에 1,100선까지 상승할 것으로 봤다. 윤성화 음양파동경제연구소장은 5월께 930~950선에서 고점을 찍은 후 장기하락을 시작할 것이라며 동떨어진 의견을 내놓았다.
◆ IT 내수업종 유망, 소재업종 조심 = 새해 국내 증시에 영향을 끼칠 주요 변수는 무엇일까? 장 대표는 달러 약세 지속과 중국 위안화 평가절상을, 이 센터장은 내수회복 여부를 가장 큰 변수로 제시했다. 박 상무는 집단소송제 실시로 인한 한국기업의 투명성 제고, 이 본부장은 환율과 국내투자자 증시복귀 여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윤 소장은 8월께 북한 또는 다른 지역에서 충격적인 지정학적 사건이 돌발, 증시는 물론 경제전반을 크게 흔들어 놓을 것이라고 주장해 눈길을 끌었다.
이 같은 전망을 바탕으로 장 대표는 디스플레이와 조선업종을 유망종목으로, 화학 철강 등 소재업종을 하락업종으로 꼽았다. 이 센터장은 정보기술(IT)과 증권업종을 유망종목으로 선정했다. 또 장 대표와는 달리 화학업종도 하반기까지 상승세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박 상무는 올해 한국증시를 견인할 테마로 소비자의 디지털화, 중국 성장, 배당, 국내소비 등 4가지를 제시하며 IT 은행주 등을 추천했다. 이 본부장은 내수와 은행업종을 유망종목으로, 철강 화학 등 소재종목을 조심해야 할 업종으로 분류했다. 윤 소장은 코스닥 종목이 상반기 강한 모습을 보일 것이라고 예상했다.
◆ 저축하는 마음으로 투자를 = 새해 투자자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고수들은 "올해 수급 환경이 그 어느 때보다도 좋은 만큼, 주식을 사서 저축한다는 마음으로 장기투자에 나선다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장 대표는 우량 IT종목의 저점 매수나 은행주 중심의 투자전략을 권했다. 이 센터장은 업종대표주와 IT주식 매수 후 장기보유 전략을, 박 상무는 집단소송제 도입에 따라 시장지배력과 함께 경영 투명성을 갖춘 기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본부장은 3~5년 장기투자 하겠다는 마음으로 분산투자 하는 게 중요하며, 분산투자에 자신이 없다면 간접투자도 좋은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반면 윤 소장은 4월 초 지수가 많이 빠지는 듯 할 때가 매수 적기이며, 5월께 지수가 900선을 웃돌면 미련 없이 매도하라고 강조했다. 코스닥 및 IT 등 일부 종목은 8월까지 상승할 수도 있으나, 대부분의 종목이 5월에 고점을 찍고 그 이후 장기침체에 빠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영오기자 young5@hk.co.kr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장인환 (46) KTB자산운용 대표
현역 펀드매니저 시절 단기투자로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는 스폿펀드의 대가로 유명했다. 종목 하나를 고르면 집중적으로 대량거래에 나서는 과감함 때문에 ‘장대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이후 자산운용사 경영자로 변신했으나, 지금도 현장감각을 잃지 않으려고 매일 직접 거래에 뛰어들고 있다.
●이종우(44) 한화증권 리서치센터장
펀드매니저와 투자전략가 경력을 두루 섭렵한 증권가에 보기 드문 팔방미인. 각 언론사가 선정하는 베스트 투자전략가에 단골로 이름이 오르며, 성실한 분석과 논리정연한 전망으로 신뢰가 높다. 개미들에게 "한발 늦더라도 충분히 확인하고 매매해도 결코 늦지 않는다"라는 기다림의 미학을 강조한다.
●박천웅(43) 모건스탠리 리서치 헤드
13년간 홍콩 싱가포르 뉴욕 런던 등지에서 한국 및 아시아 태평양 펀드를 운영했던 한국 증시의 대표적인 국제통. 현대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 메릴린치 투자관리회사 아시아 태평양팀 포트폴리오 매니저 등을 역임했다. 한국경제에 관해 예리하면서도 따뜻한 애정을 담은 분석을 내놓고 있다.
●이형복(41) 한국투신운용 주식운용본부장
총 9,000억원 규모의 ‘TAMS 거꾸로펀드’를 운용하는 베테랑 펀드매니저. 현재 성장형 펀드 중 6개월 수익률 1위를 기록하고 있다. 2000년 기관투자가 대상 수익률 게임에서 1위를 차지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저평가 우량주를 발굴해 중장기 수익률을 극대화하는데 남다른 강점이 있다.
●윤성화(49) 음양파동경제연구소장
2001년 9·11사태 직후 폭락장에서 풋옵션으로 180배 고수익을 올리며 주목 받기 시작한 재야 투자가. 음양오행설을 이용한 자기만의 독특한 투자기법으로 2000년 5월, 2002년 4월 등의 폭락장을 예견했다. 하지만 지난해 10월 환율하락을 주가하락으로 오판, 손해를 보기도 해 완성된 이론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 올 주가상승 낙관론 근거는…
종합주가지수 1,000포인트의 꿈을 올해는 과연 이룰 수 있을까? 국내 증시의 장기 박스권 및 1,000포인트 돌파는 매년 나오는 ‘덕담’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 하는 전문가도 있지만, 올해처럼 증시 전반에 1,000포인트 돌파를 점치는 증권사가 많은 때도 드물었다. 새해 예상 지수를 발표한 증권사 가운데 삼성과 교보, 서울증권을 제외한 대부분이 올해 1,000포인트 돌파를 점쳤으며, 심지어 고점을 1,550포인트로 잡은 증권사까지 있다.
올해 경제가 더 나빠질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이 줄을 잇고 있는데도 증시 전망만은 낙관적인 이유가 무엇일까? 우선 펀더멘털(경제 기초체력) 측면에서 비록 경기가 나빠져도 국내 기업들의 체질이 나아진 만큼, 기업 이익이 적자로 바뀔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지난해 하반기 내내 삼성전자 주가를 40만원대 초반에 머물게 했던 정보기술(IT) 경기 둔화도 올해엔 개선될 전망이다. 수급 측면에서는 연기금 등 기관 투자가들의 주식 비중 확대와 초(超)저금리 기조에 따른 개인 자금의 적립식펀드 등을 통한 유입 등이 호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신증권은 "경기 변화에 취약하던 국내 기업들의 이익구조가 안정을 찾고 기관·연기금 등의 자금 유입으로 수급이 개선되면서 국내 증시가 미국형 증시 패턴으로 전환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화증권도 "국내 경제가 성장에서 성숙 단계로 진입함에 따라 종합지수도 꾸준하게 상승, 역사적 고점(1994년 1,137포인트)을 넘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물론 1,000선 돌파는 ‘꿈’으로 끝날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수급 안정으로 과거처럼 지수가 700선 이하로 주저앉는 상황은 벌어지지 않겠지만, 지난해처럼 내수 회복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고 수출 기업의 원화절상 효과가 가시화할 경우 상승 여력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진주기자 parisco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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