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행동으로 일을 망쳐 놓았을 때 ‘닭짓했다’고 한다. 너무나 빨리(5초) 까먹을 때 쓰는 ‘닭 대가리’는 또 어떻고? 기분 나쁜 말 중 하나다. 지난해 여름 방송됐던 드라마 ‘풀하우스’에서 비와 송혜교가 사랑다툼 할 때마다 등장하던 대사가 바로 "야, 이 닭 대가리야!" 애정을 숨기려 일부러 못되게 내뱉는 말이라고 해도, 거슬리기는 한가지인가 보다. 결국 시청자들의 항의에 닭 대가리는 ‘조류’라는 말로 대체됐다. 이런 표현들은 조류 가운데서도 닭의 지능지수가 가장 낮다는 편견에서 시작됐다.
닭은 늘 하찮은 취급을 받아왔다. 귀한 꿩 고기를 대신해 떡국의 재료로 쓰이면서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그래서 생겼다. ‘닭 벼슬이 될 망정, 쇠꼬리는 되지 마라’는 말도 만만찮다. 잘고 보잘 것 없다는 의미다. ‘닭의 새끼 봉이 되랴’ ‘닭이 천이면 봉이 한 마리’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닭과 관련해 알려진 이야기 중 가장 희한한 것은 목이 잘리고도 살아난 닭이다. 1945년 콜로라도주 푸루이타이시의 한 양계장에서는 도살됐던 닭이 머리가 잘린 채로 양계장 이곳 저곳을 활개치고 다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마이크’로 이름 붙여진 이 닭은 훤히 드러난 식도를 통해 사료를 먹으며 1년 반을 더 살았고, 주인은 그 닭을 서커스에 등장시켜 떼돈을 벌었다. 마이크 이야기는 2003년에는 페이크 다큐멘터리(다큐 형식을 빌린 영화) ‘머리 잘린 닭 마이크’(‘Click Flick’, 감독 알렉산더 필립)로 만들어졌다. 목 잘린 닭이 뛰어다니는 장면이라니, 꿈에 나올까 무섭다.
닭이 서러운 신세로 전락한 것은 사람 곁을 지켰기 때문이다. 닭이 날지 못하게 된 것은 3,000~4,000년전 가축화하면서부터다. 닭도 깃털로 이뤄진 날개를 지닌 하늘을 나는 새였다. 그러나 사람과 살면서 몸무게는 늘어나고, 날개 근육은 줄어들어 어느날부터인가 날지 못하는 새로 변해 버렸다.
어쩐지 찬밥 신세로 전락한듯 하지만, 닭은 예로부터 신성한 동물이었다. 새해 첫날 사람들은 닭이나 호랑이 그림을 붙여 액을 물리치곤 했다. 크게 울어 새벽을 알리는 ‘태양의 새’로, 잡귀를 쫓는 영험한 동물로 닭은 귀히 여겨졌다. 12지(十二支) 동물 가운데 유일하게 날개 달린 짐승이라 하여 땅과 하늘을 연결하는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기도 했다. 수탉의 붉은 볏은 관(冠)을 상징했고, 매일 알을 낳는 암탉은 다산(多産)을 상징했다.
한가지도 갖추기 어려운 덕을 닭은 5가지나 갖추었다. 머리에 관(冠)을 쓰고 있어 문(文), 날카로운 발톱을 가져 무(武), 적을 만나면 물러서지 않고 싸우니 용(勇), 먹을 것이 있으면 주위에 알려 인(仁), 늘 시간을 지켜 새벽을 알려 신(信) 덕을 갖춘 동물로 봤다.
사람들은 너무나도 오만해서 지나치게 헌신적이거나, 언제나 곁을 지키거나, 묵묵히 도와주는 이들을 무시하기 마련이다. 닭도 그렇다. 설날 꿩 대신 맛난 떡국 국물을 선사해 온 닭을, 봉황 한마리를 빛나게 하는 수많은 닭을 귀히 여기지 않는 것은 인간의 오만이다. 2005년 을유년(乙酉年) 닭의 해를 맞아 잠시나마 그 오만을 반성해 보시길.
그리고 올 한해 모두 ‘닭짓’하지 말고, ‘닭대가리’ 소리도 듣지 않도록 열심히 사시길. 이 악무느라 힘들 때면 요즘 대유행인 입 안이 얼얼해지는 매콤한 불닭에 생맥주 한잔 마시며 ‘하하하하!!!’ 웃어 넘기시길.
최지향기자 mist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