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해풍 견뎌낸 ‘우국 소나무들’함박눈이 내리는 창가에 서서 창밖을 보노라면 어느새 삶의 한가운데서 벗어나고픈 생각이 든다. 이은상 시, 김동진 곡 ‘가고파'를 흥얼거리며 지도를 뒤적인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이 겨울에 찾아보고픈 마을숲을 찾으니 한산섬의 제승당이 나온다. 충무공 이순신의 유적지로 잘 알려진 제승당의 위치는 경상남도 통영시 한산면. 통영에서 배를 타고 남동쪽으로 약 2km 나가야 한다.
통영에서 여객선을 타고 바다에 나아가 잔잔한 푸른 물결을 바라보며 조선 선조 25년(1592)의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왜의 수군을 크게 무찌른 전투가 이곳에서 치뤄졌음을 상기한다. 한산해전. 조선과 왜 수군의 주력함대 간의 충돌을 승리로 이끈 싸움이었기에 역사상에 길이 빛날 수 있었던 대첩. 학익진(鶴翼陣; 학의 날개 모양을 한 군대의 배열)을 펼쳐 왜선을 침몰시키는 장면을 상상하기에 충분한 시간이 흐르니 거북선 모양을 한 등대가 나타난다. 뱃길을 따라 보이는 숲은 해송(海松)으로 가득하다. 멀리서 보아도 소나무와 다른 것이 수피가 검은 느낌이 들고 거칠다. 가지의 뻗음도 엉성하고 소나무잎 보다 억센 잎을 가진다. 사람도 바닷가 사람이 거칠게 느껴지는데 나무조차도 바닷바람에 견디어낼 수 있는 거친 모습이다.
배는 어느새 한산만에 도달한다. 한산도는 구릉성 산지에 소계곡이 깊숙이 발달하여 게의 집게다리 모양을 한 전형적인 익곡만(溺谷灣)이 발달한, 수군기지로서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다. 삼도수군절도사로 임명된 이순신이 1593년 8월 이곳 한산도로 진영을 옮김으로서 군영의 기원이 되었다. 제승당 가는 길가의 숲은 소나무숲이다. 적갈색의 수피가 포근함을 안겨주는 것이 왠지 고향에 온 기분이다. 숲 바닥은 감태나무 같은 상록성 관목들로 가득하다.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인공 식재된 팔손이나무, 영산홍 등이 제승당 가는 길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지만 정작 마을숲으로서의 가치가 돋보이는 것은 제승당 주변의 느티나무 숲이다. 이 숲은 능선의 제승당을 감싸 안고 해수면까지 우거진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상록수와 어우러져 그 자태를 한껏 뽐내고 있다. 겨울이기에 더욱 두드러진 듯, 잎을 떨어뜨린 채 나목으로 변신한 느티나무의 잔잔한 가지들이 부드러운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제승당으로 다가가니 종가시나무, 돈나무, 먼나무, 금목서 등 특이한 상록활엽수들도 볼 수 있었다.
전통 문양으로 장식한 대고(大鼓)가 있는 수루에 올라 통영 쪽을 바라보며 편액에 쓰여 있는 이 충무공의 우국시 ‘한산섬 달 밝은 밤에’를 읊는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적에 어디서 일성호가(一聲胡)는 남의 애를 끊나니." 한산정에 내려가면 소나무숲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한산정은 이순신 장군이 활을 쏘던 곳. 이곳에서 활을 쏘면 화살은 깊게 들어온 바다를 지나 건너편 소나무숲 가운데 설치한 과녁을 향해 날아간다. 그 화살을 따라가는 기분으로 과녁을 향해 걷는 소나무숲길은 바다 한가운데 섬에서도 소나무가 쭉쭉 뻗어 그 높은 기상을 느끼게 한다.
배편은 통영 여객선터미널(055-641-0311)에서 제승당까지 아침 7시 30분부터 1시간 30분 간격으로 오후 6시까지 8회 운행한다. 한산섬 일대를 도는 유람선은 제승당, 해금강, 소매물도 등을 보여준다.
임주훈 국립산림과학원 박사 forefire@foa.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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