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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이 보내는 송년 편지/올해 고단하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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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박범신이 보내는 송년 편지/올해 고단하셨지요?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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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고단하셨지요?2005년은 어떨까요. 또 2006년은요. 시간엔 원래 눈금이 없습니다. 지나간 시간은 이미 시간이 아니라 기억에 불과합니다. 어떤 이들에겐 기억이 현재의 시간 속에 존재하며 앞으로의 시간을 결정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간은 일자(一字)형 수직적 구조가 아니라 피라미드형이나 마름모꼴 같은 수평적 구조를 포함하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각자 어떻게 짜느냐에 따라서 그 빛깔과 무늬와 쓰임이 달라지는 직물과도 같은.

우리는 어떤 직물을 짜온 것일까요.

당신이 짜고 싶었던 직물과 ‘우리’가 짜온 직물 사이엔 분명히 큰 균열이 져 있습니다. 개인과 사회, 역사 사이의 균열이겠지요. 이를테면 우리는 더 잘 살고 싶은데 세계는 우리의 뜻을 반영하지 못했고, 또 우리는 좀더 따뜻한 휴머니즘의 시대를 누리고 싶은데 세계는 여전히 분열과 충돌의 리얼리즘시대를 마감하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지금, 새로운 전인미답의 시간 앞에서 우리가 느끼는 불안이 바로 거기 있습니다.

그렇지만 한번 돌아보시지요. 지난 반세기, 우리가 짜온 직물을요. 거기엔 경제개발이라는 무늬가 있고 민주화란 무늬가 들어 있습니다. 성과는 훌륭했습니다. 많은 희생이 있었지만 세계사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한 속도로 우리가 목표치에 접근해온 것은 사실입니다. 우리의 위대성은 그것만으로도 이미 증명되었습니다.

물론 그것이 끝은 아니겠지요.

호사다마라고, 모든 일이 다 성취가 있으면 잃는 것 또한 있기 마련입니다. 예컨대, ‘우선 파이를 키우자’는 속임수로 제 배를 불려온 기득권그룹이 만들어온 부조리한 사회구조도 있고, 분단상황을 담보로 해서 제 그룹 챙기기로 바쁜 소모적 이념갈등도 있고, 그리고 무엇보다 기득권그룹을 허겁지겁 좇아가려다가 제 정체성을 내다버리고 우왕좌왕 욕망을 따라 살아온 ‘우리’의 비뚤어진 자화상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라고 이 역사 속에서 면죄부를 받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욕망의 주머니는 경제개발의 속도보다 훨씬 빠르게 팽창해왔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탄해 마지 않는 부조리한 사회구조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한사코 바라던 것이기도 했습니다. 그들을 좇아서 일렬종대로 서서 악을 쓰고 경쟁해야 그들이 계속 그들 몫을 누릴 수 있으니까요. 우리를 끝없이 욕망의 노예가 되도록 획책하고, 또 끝없이 룰도 없는 싸움판으로 내몰고자 하는 간교한 세계사적 전략이 보이지 않는지요?

‘혁명’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정치적인 억압을 무너뜨리는 혁명이 아니라 어느덧 자본의 노예, 욕망의 노예가 된 우리들 모두의 의식을 바꾸어 새로운 삶의 프로그램으로 무장하는 혁명 말이지요. 히말라야에 가면 5,000m 봉우리도 산이라고 하지 않고 언덕이라고 부릅니다. 반만 년 동안의 가난과 일제, 한국전쟁, 군부독재,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생각하면, 비록 지금 우리가 고단할지라도, 우리 앞에 놓인 것은 작은 언덕일지도 모릅니다. 문제는 그것을 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2005년 새해 벽두는 우리가 각자 참된 ‘나’의 위치로 돌아가서, 과연 어떻게, 얼마나 바르게, 또 얼마나 이웃과 함께, 저 언덕을 넘을까 하고 생각하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시간은 ‘돈’이 아닙니다. 미국시인 롱펠로는 시간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습니다. "시간은 영혼의 생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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