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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13년째 한 수첩을 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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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원의 길위의 이야기] 13년째 한 수첩을 쓰며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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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내가 사용하는 수첩은 1992년에 나온 것이다. 내일 해가 바뀌면 13년째 쓰는 셈인데, 한 수첩을 오래 쓰는 이유는 이 수첩이 특별히 좋아서도 아니고, 물자절약을 위해서도 아니다. 천성이 게을러 지금 사용하고 있는 수첩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새 수첩에 옮겨 적는 것이 귀찮아서다.이번 겨울에도 내년 달력이 인쇄된 수첩 몇 개를 받았는데 그 안에 적혀 있는 전화번호를 옮겨 적을 생각을 하니 그 일도 쉽지 않아 내년에도 이 수첩 그냥 그대로 쓰게 될 것 같다.

수첩 하나를 13년째 쓰다 보니 그 동안 변함없이 연락하며 만나는 친구가 있고, 또 예전 한때는 무척 친했는데 지금은 어디에서 무얼 하는지도 모를 만큼 소원해진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친구는 이사를 여러 번 다녀 전화번호 역시 그 회수만큼 줄을 긋고 다시 쓰기를 여러 번 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선생님들과 선배들과 친구들의 전화번호다. 흘러간 시간도 오래 되고 이제 수첩에서 이름을 지워야 하는데 머릿속에 있는 이름을 수첩에선들 어떻게 지우겠는가. 그러니 내 수첩에 이름이 적히신 분들 모두 오래오래 사시라고, 한 해가 가는 날 내가 기도해드려야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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