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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떠나는 주말 - 새 길로 떠나는 옛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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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zine Free/떠나는 주말 - 새 길로 떠나는 옛길

입력
2004.12.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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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 보니 고속버스 요금이 다 내립디다. 서울까지 4,000원 돈이 싸졌소." 요즘 경북 문경 주민들은 한껏 들떠있다. 이 달 중순 중부내륙고속도로가 개통됐기 때문이다. 서울길이 1시간이나 빨라졌다. 이처럼 새 길은 새 희망을 품고있다.생의 흔적인 길은 수많은 시행착오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좁은 길에 발걸음이 잦아지면 수레길이 만들어지고 그 길은 다시 자동차가 내달리는 포장길로 시간의 궤적을 좇는다. 뻥뻥 새 길이 뚫려 빠르고 편해졌지만 가슴 한 켠 서운해지는 것은 사라지는 길에 대한 연민 때문인가. 그렇다면 문경으로 갈 일이다. 가장 아름다운 옛길이라는 문경새재가 있는 곳. 새 길을 타고 떠나는 옛길 여행을 안내한다.

조선 태종때 뚫린 새재는 500년 동안 한양과 영남을 잇는 제1의 대로였다. 당시 동래에서 한양까지 가려면 추풍령과 새재, 죽령 등 3개의 고개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다. 추풍령은 보름길, 죽령은 열엿세길인 반면 새재는 열나흘길로 가장 빠른 길이었다. 특히 과거시험 보러 가는 선비들은 유독 새재만 고집했다. 추풍령은 낙엽처럼 떨어지고 죽령은 대나무처럼 미끄러질 수 있기 때문이라며.

70년대 개발을 진두지휘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이 유독 이 새재만은 '포장하지 말고 고즈넉한 멋을 살리라'고 지시해 남은 흙길. 새재의 정갈한 흙길은 눈과 귀와 마음을 열고 편안히 걷는 길이다.

새재에는 고갯길의 입구 주흘관을 비롯해 중턱의 조곡관, 고갯마루의 조령관 등 3개의 관문이 버티고 섰다. 임진왜란때 순식간에 서울까지 빼앗기자 그 뒤 부랴부랴 쌓은 성곽이다.

그 첫 관문 주흘관에서 새재 여행은 시작된다. 장대한 성문을 지나니 왼편은 드라마 왕건으로 유명한 KBS 세트장이다. 2만평의 부지에 조성된 고려궁 백제궁 서민촌 양반촌 등에 구경 나온 관광객들이 북적북적하다.

고갯길이라지만 경사가 낮아 힘들지 않다. 2관문까지는 객사였던 조령원과 영남 감사 이취임식이 열리던 교구정 등 볼거리가 많아 지루하지 않다. 길가에는 낙동강으로 흘러들 계곡물이 내내 동무한다. 졸졸 거리는 물소리도, 숲을 투영하는 물빛도 시린 겨울이라 더욱 명징하다. 2관문을 지나 3관문까지는 한층 고즈넉한 분위기다. 숲은 깊어지고 인적은 뜸해진다.

'문경새재 아리랑비'를 지나 한참을 오르면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이 급제를 기원하던 책바위가 있다. 주변은 온통 소원을 적은 소원지들로 마치 서낭당 같은 모습이다. 소원은 가족 건강, 시험 합격을 기원하는 내용이 많지만 그중에는 '지금 애인과 헤어지게 해달라', '짝꿍을 바꿔달라'는 이색 주문도 있다. 어쩌랴 그 소망이 간절하다는데.

새재의 정상 조령관에 올라서니 백두대간의 명산 주흘산과 조령산이 좌우로 굽어보고 있다. 첩첩이 넘실대는 산물결은 장쾌하고 차가운 바람이 머리를 시원케 한다.

성문 너머는 충북 괴산 땅. 길은 포장도로다. 그새 타박타박 흙길에 담뿍 빠져버린 발걸음은 저절로 오던 길로 돌아간다. 문경새재 관리사무소 (054)550-6421

문경=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옛길여행 | 문경 구름도 쉬는 하늘재엔 마의태자의 恨이…

문경새재가 정겨운 것은 지금껏 고운 흙길이 남아 과거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문경에는 새재 말고도 그보다 더 오랜 역사의 길이 있다.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하늘재’와 ‘영남대로 옛길’이 바로 그곳이다. 천년의 애환이 켜켜이 쌓인 옛길로의 여행은 새로운 시간을 여는 지금 더욱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다.

◆ 하늘재

남으로 치닫던 백두대간은 태백산에서 방향을 틀어 남북을 갈랐다. 그 백두대간을 넘어 영남과 충청을 이은 첫 길, 첫 고개가 바로 하늘재다. 삼국사기는 신라 8대왕 아달라왕이 156년에 북진을 위해 뚫었다고 적고있다. 계립령, 마골점, 대원령 등으로 불리던 하늘재는 영주와 단양을 잇는 죽령보다도 일찍 열렸다. 언뜻 하늘과 맞닿아있다고 해서 이름 지어졌지만 해발 525m로 그리 높지는 않다.

하늘재 여행은 문경읍 관음리에서 시작한다. 갈평리 삼거리를 지나 포암산으로 오르면 포장도로의 끝이 하늘재 정상이다. 베를 한 폭 펼쳐놓은 듯한 포암산이 고갯마루를 내려다보고 있다.

하늘재 정상에서 충북 충주시 상모면 미륵리로 내려가는 고갯 길은 차 한대 지나갈 폭의 흙길이다. 2㎞의 길지 않은 이 길에는 잎을 떨군 나무들이 무성한 가지 만으로 긴 터널을 이뤘다. 마른 솔잎 두둑하게 깔린 흙길은 찾는 이들이 없어 고즈넉하다. 매서운 겨울바람이 귓불을 아려오지만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푹신거림이 아늑하다.

푸른 솔잎 사이로 아침 햇살이 비스듬히 부서져 내리고 그 잔잔한 빛은 다시 바닥의 서리옷을 입은 솔 낙엽에 부딪혀 더욱 잘게 바스러진다.

하늘재는 지리적 요충지. 이곳을 통해 신라는 중원을 꿈꿨고 고구려 백제는 남녘 바다를 도모했다. 세력 다툼의 접점으로 싸움이 빈번할 수 밖에 없던 곳이다. 하지만 길은 너무 조용해 당시의 피비린내 나는 전투를 전해주지 않는다. 발길에 차이는 돌멩이는 정겹고 콧속을 파고드는 공기는 달콤할 뿐이다.

하늘재가 품고 있는 애틋한 사연중의 하나가 마의태자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에 등을 돌리고 금강산으로 향하던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넘은 길이 이곳 하늘재다. 남매는 고개를 넘어 월악산 기슭에 각기 절을 세웠다. 덕주공주는 덕주사를 지어 남향의 바위에 마애불을 세웠고 고개 바로 밑에 미륵사를 세운 마의태자는 석불을 북쪽으로 향하게 해 마주보게 했다.

하늘재 고갯길의 끝, 충주 땅 미륵리에서는 미륵사가 있던 너른 터를 만날 수 있다. 귀부비석좌대 석등 석탑 등이 남아 천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현세불이 산다는 미륵리와 미래불이 살피는 관음리를 잇는 하늘재는 이렇게 현재와 미래를 소통하고 있다.

◆ 토천, 영남대로 옛길

문경의 옛길 여행 중 빼놓지 말아야 할 곳이 영남대로 옛길이다.

진남역 인근에 영강의 물줄기를 가로막고 선 깎아지른 벼랑이 있다. 그 벼랑을 타고 오르내리는 좁디 좁은 길이 그곳이다. 예전 부산 동래와 한양을 잇던 중심길인 영남대로 중 옛 모습이 보존된 길로 지금껏 숨겨져 왔다. 이 벼랑길은 고려 태조 왕건이 찾았다 한다. 남으로 진격할 때 이 벼랑에서 길이 끊어졌는데 한 마리 토끼가 벼랑을 내려가는 것을 따라가서 길을 열었다. 그래서 이길은 토천(兎遷)이라 불린다.

이 길에서는 눈여겨 봐야 할 바위가 있다. 널찍한 검은 바위 위에는 짚신을 얹어 놓으면 딱 맞는 발 모양의 홈이 서너 개 움푹 패어있다. 긴 세월 고개를 넘는 이들이 디디고 또 디뎌서 생긴 자국이다.

이 길은 얼마 전에야 발견됐다. 그것도 일본인 유학생에 의해 세상에 공개됐다. 한국의 옛길에 흠뻑 빠진 도도로키 히로시(34)씨가 한 발 한 발 몸으로 답사해 찾아낸, 하마터면 영영 잊어버릴 뻔한 귀한 옛길이다. 이 길을 따라 비탈을 오르면 삼국시대의 성, 고모산성이 있다.

문경 취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 이화령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화령은 일제에 의해 1920년대 열린 ‘신작로’다. 새재를 대신했던 이 길도 수년 전 이화령 터널이 뚫리면서 한물간 추억의 길이 되고 말았지만 이화령 터널길 마저도 이제는 중부내륙고속도로에 길지 않았던 영화를 내주어야만 하는 신세다.

정 많던 늙은 퇴기를 찾는 기분으로 오른 이화령은 스산했다. 어쩌다 한 두 대 곁을 스칠뿐이다. 고갯길 중턱에서 내려다 본 문경읍은 반듯한 3번 신국도가 가로지르고 그 위로 우악스럽게 뻗은 고속도로가 겹쳐서 가리고 있다. 10여 년 전 기억 속의 아늑했던 풍경은 간데없다.

새 길이 뚫려 편해졌는데. 그 만큼 아니 그 이상을 길에서 잃고 있는 것은 아닌지 길은 내게 되묻는다.

문경=글·사진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 문경 | 또 다른 볼거리

장작가마서 구운 찻사발

이천·강진자기가 댈건가

문경은 도자기의 땅이다. 주민들의 도자기에 대한 자부심은 경기 이천 광주, 전남 강진 못지않다. 문경읍 근처에서 발굴된 가마터만도 82개에 달한다. 문경시 문화관광과 서원 과장은 "산이 깊은 문경은 질좋은 흙과 땔감이 많고 문경새재 등 영남의 주요 길목으로 판로가 용이해 도예가 꽃을 피웠다"고 설명했다.

인간문화재 김정옥 선생과 명장 천학봉, 이학천 선생 등이 터를 잡고 있고 많은 후계자들이 예술혼을 불사르고 있다. 시는 매년 5월초에 문경한국전통찻사발축전을 연다. 이곳 도예의 특징은 여전히 장작가마만 고집한다는 것. 가스가마를 쓰는 곳은 회원가입을 받지 않는단다. 자존심으로 빚은 작품이기에 이곳에서 나온 다기세트는 다른 지역의 것 보다 2,3배 비싸다. 이화령휴게소 옆의 문경도자기전시관에서는 문경의 도예문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도자기 빚기 체험도 할 수 있고, 자신이 빚은 도자기는 전시관내 가마에서 구워져 받아볼 수 있다. 참가비 1만원. (054)550-6416.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의 문경종합온천은 맑은물의 온천과 황토빛 온천을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지하 700m에서 뽑아올린 알카리성 온천은 수안보처럼 무색 무취의 맑은 물. 지하 900m 화강암층과 석회암층 사이에서 채취한 칼슘·중탄산천 온천은 황토를 풀어놓은 듯 뿌옇다. 칼슘·중탄산천 온천은 수온이 30도로 몸의 온도보다 낮다. 서늘하면서도 몸을 상쾌하게 하는 이색 온천욕이다. (054)571-2002

태백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탄광이 많았던 곳이 문경이다. 가은읍의 문경석탄박물관은 1994년 폐광된 은성탄광이 있던 곳에 지어진 산 교육장이다. 연탄 모양의 전시관에서는 석탄산업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054)550-6426문경=이성원기자

■ 여행수첩

어떻게 가나 중부내륙고속도로 문경새재IC에서 나와 3번 국도를 타고 북쪽으로 올라오면 문경새재도립공원을 만난다. 하늘재는 문경온천이 있는 문경읍을 지나 901번 지방도를 타고 동로 방면으로 향하다 갈평리에서 좌회전해서 관음리로 오르면 도로 끝에 계립령유허비가 나타난다. 이곳부터가 하늘재다. '영남대로 옛길'은 3번 국도를 타고 점촌 방향으로 내려오다 열차 진남역 부근의 진남휴게소에서 올라간다. 지금은 열차가 다니지 않는 철로를 건너 산책로를 따라 오르면 '영남대로 옛길'이다. 고모산성이 지척이다.

어디서 잘까 숙박시설은 문경새재도립공원안에 몰려있다. 문경관광호텔(054-571-8001)이 유일한 호텔이다. 최근 문경시에서 완공한 유스호스텔은 540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세미나실 식당 등을 갖추고 20인실, 8인실과 함께 2,3인실의 가족실도 4실 운영한다. 가족실은 1박 5만원. (054)571-5533

뭘 먹을까 문경새재도립공원안의 목련가든(054-572-1940)은 '왕건이 반한 집'이다. 드라마 '왕건' 주인공 최수종이 이 집의 조그만 방에서 오랫동안 숙박을 했다. 정갈한 음식맛과 다정한 주인에 끌렸기 때문. 주인과는 의형제를 맺었다고. 손두부전골, 손두부산채비빔밥 등 두부가 주메뉴. 대승사 김룡사 가는 길의 산북면 아천교 인근의 아천교횟집(054-553-8584)도 유명하다. 잘게 썬 송어회를 쑥갓, 오이, 깻잎, 당근, 미나리 등 갖은 야채와 함께 마늘소스, 고추장 소스로 버무려 먹는다. 야채와 함께하는 송어회가 입안 가득 고소함을 피운다. 문경새재도립공원내의 소문난식당(054-572-2255)은 묵조밥으로 이름을 떨치고 모전동의 약돌돼지샤브샤브(054-556-7192)와 마성면의 진남매운탕(054-552-7777) 등은 문경을 대표하는 향토음식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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