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에 왕위에 올라 33세에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그리스 페르시아 인도에 이르는 대제국을 건설했던 알렉산더 대왕. 짧은 기간 폭풍처럼 살다간 그의 이름은 현대인에게 신화로서 기억되고 있다. 그러나 영화 ‘알렉산더’는 역사책에 쓰여진 위대한 정복자의 업적보다는 우리가 알지 못했던 영웅의 숨겨진 삶에 초점을 맞춘다.그리스 신화를 열거하며 "왕은 혈육도 버릴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아버지 필립왕(발 킬머)과 아들을 통해 정치적 야망을 실현하려는 어머니 올림피아(안젤리나 졸리) 사이에서 자라난 알렉산더. 그는 강한 자 만이 살아 남는다는 세상의 이치를 온 몸으로 배우며 성장한다. 암살된 아버지의 뒤를 이은 알렉산더는 동방원정에 나서고, 13년간 세상 끝을 향해 내달린다.
이성보다 열정을 앞세운 그의 거침없는 질주에 경외감을 가질 만하다. 그러나 용기어린 그의 여정에 동참하기에는 거리감이 느껴진다. "자유를 위해, 영광을 위해, 그리스를 위해"라고 외치며 병사의 사기를 북돋우는 장면은 그 거리감의 원천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자기의 야망을 위해 부하들을 사지에 내모는 영웅의 빈약한 논리가 엿보인다. "다른 문화에 대한 부하들의 오만이 역겹다"고 말하면서도 야만족들을 해방시키는 일에 의미를 부여하는 알렉산더의 모습도 선뜻 다가설 수 없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세계화를 외친 인물의 자기모순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175분의 긴 상영시간 동안 전투 장면은 단 두 번. 전장에서 청춘을 보낸 알렉산더의 생애를 보고 싶어하는 관객들에게는 좀 야박하다 싶다. 올리버 스톤감독이 빚어낸 촘촘한 화면이 그나마 아쉬움을 달래준다. 그러나 갈등관계의 밀도가 떨어지고, 알렉산더의 정신 세계를 너무 파고든 때문인지, 지루한 느낌을 떨쳐내기는 힘들다.
올리버 스톤 감독이 기획단계에서는 알렉산더역에 톰 크루즈를 점 찍었다고. 콜린 파렐은 감독의 차선책이 최선책이었음을 증명하듯 눈부신 연기를 펼친다. 알렉산더 대왕을 양성애자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그리스에서는 상영금지 목록에 오를 뻔했다. 30일 개봉. 15세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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