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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호기자 푸껫 르포/ "맨손으로 해변 뒤져 며느리 시신 찾아" 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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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호기자 푸껫 르포/ "맨손으로 해변 뒤져 며느리 시신 찾아" 분통

입력
2004.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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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시신발굴작업을 도와주지 않습니까"29일 오전 8시(현지시각) 태국 푸껫 로얄호텔 로비는 지진해일 희생자 유가족들의 성토장으로 변했다. 전날 팡아주(州)의 카오락에서 딸 이혜정(25)씨의 죽음을 확인한 어머니 김재임(54)씨는 "딸이 죽은 것도 억울한데 시신을 제대로 찾아주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다"며 분노를 터뜨렸다. 새신랑 조상욱(28)씨의 어머니 여연희(55)씨도 "카오락 해변에서 맨손으로 모래를 파가며 며느리의 시신을 찾았다"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실종된 또 다른 신혼부부의 유가족인 허진연(31)씨는 "오늘도 시체를 찾기 위해 카오락으로 간다"면서 "우리 정부관계자는커녕 여행사 가이드조차 얼굴 한번 비치지 않는다"고 화를 냈다.

이날 푸껫 시내에 마련된 한국인 피해 사고종합대책반은 어둡고 침울한 분위기였다. 오전 11시부터 대책회의에 참가한 30개 여행사 대표들은 한결같이 "이젠 시체 발굴 보다는 합동분양소쪽에 역량을 집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자포자기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한 여행사 대표는 "사고 발생한 후 4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사실상 시체발굴은 불가능한 것 아니냐"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푸껫 한인협회 회장 진명표(52)씨는 "행방불명자의 소재지를 파악하기 위해 각 여행사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며 "하지만 태국에 500여명의 행방불명자가 있다는 외교부 발표는 말도 되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홍영식 영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영사 등 대사관 직원들이 피피섬이나 카오락에 방문해 일일이 시체 발굴작업을 돕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유가족들이 시신을 찾아 연락이 오면 해당 지역으로 들어가 수습해 오는 것이 최선"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로선 개별 여행자들에 대한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기 때문에 사상자가 더 늘 수 있다"고 전망했다.

푸껫시 왓꼬짓 사원에 설치된 ‘합동분양소’는 추모객이라고는 가족밖에 없는 썰렁함 속에서 부패한 시체 냄새만 진동했다.

이혜정씨의 시신이 안치된 이 곳에는 부모 등 유족 5명만이 자리를 지키며 원통해 했다. 아버지 이병희(57)씨는 "한국사람 4명이 실종됐는데도 대사관 직원 한명도 현장에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며 "이젠 현지 관계당국도 사실상 실종자 수색을 포기한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머니 김씨는 "내 딸을 살려내라"며 주검으로 돌아온 딸의 관을 붙잡고 오열했다.

이씨의 유족들은 약품처리도 못한 상태로 28도의 높은 태양열이 내리쬐는 사원에 그대로 안치돼 있는 시신이 부패할 것을 크게 우려했다. 시신을 병원으로 옮기려고 해도 계속 늘어나고 있는 사망자로 이미 병원 냉동보관소가 꽉 찬 상태라 함부로 이동할 수도 없는 상황이다. 빈소를 지키고 있던 한 여행사 대표 사장은 "나무로 만든 관 위에만 향기가 좋은 풀들을 뿌려 놓았을 뿐"이라며 "부패가 심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 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 이씨 가족들은 이날 밤 이씨를 화장했다. 이날 사체로 발견된 박민혁(4)군과 김상현(여·72)씨 가족도 화장을 결정했다.

전날 피피섬 인근 끄라비에서 발견된 임모(20·여)씨의 시신이 안치된 와쯔라 병원 영안실에는 덩그러니 시신만 있을 뿐 찾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할아버지 임상태(75)씨는 현재 며느리 김모(44)씨를 찾기 위해 다른 실종자 가족 9명과 함께 끄라비에 머물고 있다. 임씨의 시신은 냉동보관소에 안치됐지만 부패가 이미 심하게 이뤄진 상태이고, 냉동창고의 성능도 좋지 않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영안실 관계자는 "태국은 사람이 죽으면 곧바로 불교사원으로 보내 화장을 하기 때문에 영안실 장비가 열악하다"며 "앞으로 이틀만 지나면 강한 악취가 진동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26일 사망한 것으로 판명된 배무출(75)씨의 시신은 푸껫 와리쯔 병원에 도착한 후 28일 푸껫인터내셔널병원으로 이관됐지만 푸켓을 찾아 온 유가족 3명이 비행기를 통해 한국으로 보내기 위해 다른 곳에 안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교민들은 "실종자들의 시신이 추가로 발견될 경우 영안실이 부족해 손상이 클 수 밖에 없다"며 크게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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