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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남은 자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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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생각] 남은 자들을 위하여

입력
2004.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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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와 인도양 연안에서 무수한 부음이 날아왔다. 죽음은 발생하는 순간부터 당사자의 것이라기보다 남은 자의 것이다. 다음 세상을 믿지 않는 갑남을녀들에게 특히 그렇지만, 독실한 종교인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 행성의 세밑을 하염없이 을씨년스럽게 만들고 있는 그 수만의 죽음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유족과 친지들에게, 그리고 여린 마음의 선남선녀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주고 있다. 어찌해볼 수 없었던 죽음이든 피할 수 있었던 죽음이든, 갑작스러운 죽음이든 예정된 죽음이든, 죽음은 남아있는 동류들에겐 깊은 상실감의 근원이다.살붙이의 죽음을 맞은 사람의 슬픔은 흔히 ‘팔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듯하다’는 표현으로 묘사된다. 그 표현은 상투어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그것이 생뚱맞거나 과장된 비유만도 아니고 반드시 가족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것만 아니다. 가까운 친지가 세상을 버렸을 때, 우리는 실제로 사지(四肢) 하나가 떨어져나가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것은 우리들의 이타주의 때문이라기보다 이기주의 때문이다. 아니, 모든 이타주의가 결국은 확장된 이기주의라면, 그 아픔을 이타주의 때문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우리가 가족이나 친구를 묻고 슬픔을 느낄 때, 그것은 죽은 이들을 위한 슬픔만은 아니다. 그것은 차라리 우리들 자신을 위한 슬픔이다. 우리는 가까웠던 이들을 묻을 때, 우리의 일부를 거기 묻는다. 우리가 그들과 공유한 과거를 묻는다. 그들의 죽음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그들과 공유했을 미래의 가능성을 묻는다. 가까운 사람과의 영결 뒤에 우리가 느끼는 슬픔은 바로 그 사라져버린 우리 자신의 일부가 유발하는 슬픔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소재로 한국인이 발설한 언어 가운데 가장 슬프고 아름다운 것 하나는 8세기의 승려 월명이 지었다는 ‘제망매가’일 터인데, 내세를 굳게 믿었던 사람의 입에서 흘러나온 이 노래 역시 죽은 누이를 위한 진혼곡이라기보다 제 잘려나간 사지를 슬퍼하는 노래, 곧 저 자신을 위로하는 노래다. "어느 가을날 이른 바람에/ 이리저리 떨어질 나뭇잎처럼/ 한 가지에서 떠나선/ 가는 곳 모르는구나"라고 월명이 절규했을 때, 이 노래의 슬픔은 가인(歌人)이 누이와 공유했던 과거를 묻어야 하는 슬픔, 누이와 공유할 수 있었을 미래의 가능성을 묻어버려야 하는 슬픔, 곧 자신을 위해 마련한 슬픔이다.

현대의 노래 가운데 이 흐름 위에 얹혀 있는 것으로 내게 대뜸 떠오르는 것은 ‘죽은 벗에게’라는 부제를 붙여 황인숙이 발설한 두 편의 ‘진눈깨비’다. 가깝게 지냈던 동료 시인의 죽음에 바쳐진 것으로 알려진 이 시에서, 황인숙은 친구 없이 보낸 세월을 "네가 안 쓴 달력들이/ 파지처럼 쌓였던 나날"(‘진눈깨비2’)로 기억한다. 함께 나눌 수 있었을 세월을 가혹하게 앗아 가버린 죽음에 대한 원망이 읽는 이의 마음까지 저며낸다. 시인이 "네 이름 이제는/ 나를 울고 싶게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끔 네 이름을 부른다/ 내가 아무 것도 아니어서/ 삶이 나를 삐치게 할 때"(‘진눈깨비2’)라며 짐짓 대범한 체하는 것은 "유리창 저쪽/ 맑게 개인 저편// 감기지 않는 눈// 우리 다시 만날 때/ 너는 나를 기억할까?/ 내가 너를 기억할까?"(‘진눈깨비1’)라고 흐느꼈을 때의 절망적 조바심이 휘어진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시간이 남은 자들의 편이라는 것이다. 모든 좋은 것과 마찬가지로, 모든 나쁜 것도 시간 앞에서는 속절없이 무너진다. 이번 대재난으로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들의 슬픔도 그럴 것이다. 가까운 이의 죽음 앞에서 슬픔을 느끼는 것은 절대적으로 정당하다. 그러나 이 슬픔이 상(傷)함으로까진 이어지지 않기를 감히 희원한다. 내 몫의 알량한 슬픔까지 포함해서 하는 말이다.

고종석 논설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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